웨사카 붓다의 날 (20100527)
5월 28일 만월의 날에 불기는 2553년으로 바뀝니다. 테라와다 불교도에게 있어 이날은 365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하루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행에 힘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대하게 붓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한국의 전통과 달리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탄생도,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된 것(성도)도, 열반에 들어가신 것도, 함께 축하합니다. 역사적인 3개의 사건이 같은 날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어 함께 축하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서기 5월의 만월에 해당하는 날은 음력으로는 Vesākha달이므로 축제의 이름도 웨사카 축제라고 합니다. 불교도의 사이에서는 붓다의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류가 발견할 수 없었던 괴로움을 넘는 방법, 궁극적인 지혜의 길을 붓다는 발견했습니다.
붓다의 탄생에 대해서는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 (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 라고 경전에 쓰여 있습니다.
끝없이 윤회하며 괴로워하고 있던 생명에서, 윤회를 끝내는 「마지막」의 탄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편력해도 깨달을 수가 없었던 붓다는 중도를 발견해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 깨달음에 대해서는 「Khīnā jāti;생은 멸하고, kataṁ karanīyaṁ;이루어야 할 것은 이루어 끝냈으며, vusitaṁ brahma cariyaṁ;수행은 완성하여, akuppā me cetovimutti;마음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수행을 완성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마지막」의 탄생인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괴로움을 넘어 해탈하여 45년간 부처님은 전도를 하셨습니다. 마음에 괴로움은 없었지만 육체를 갖고 있었으므로 병이 들거나 때로는 굶주리거나하는 육체적 근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80세가 되고 나서 웁빠왓타나라는 곳에서 부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서 신체의 괴로움도 끝났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Bhagavā parinibbâyi (세존이 열반에 들어가셨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Pari는 「완전하게」라는 의미입니다. Nibbāyati는 「소멸한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Parinibbāyi는 「완전하게 소멸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불길이 사라졌다고 하는 의미로 유명한 「열반」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처님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또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마지막」의 탄생입니다.
「마지막」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탄생도, 성도도, 입멸도, 생명으로서의 「마지막」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Vesākha달의 만월에 일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붓다가 나타난 것의 중대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경의를 가지고 축하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5월 28일은 승리의 날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물리쳐 이긴 기념일입니다. 인류에게 행복의 길이 열린 더없이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불기의 숫자도 이날로 바뀝니다. 불교도의 정월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여러 사람이 태어나 사상가, 발명가, 종교가도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 주려고 모두 노력했지만, 인류가 사는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 봐도 「죽고 나서 천국…」등의 확인할 수 없는 약속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는 괴로움에는 대답이 없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류는 새로운 괴로움이나 문제를 만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연까지 파괴하고 살기 어려운 환경까지 만들게 됩니다. 인간이 목표하는 행복의 길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고생해도 「마지막」의 탄생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걷는 길(탐진치를 채우는 욕구의 길)은 새로운 괴로움을 만드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삶의 방법에 좋아할 것도 없고, 부정할 것도 없고, 보다 뛰어난 초월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를 비로소 부처님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붓다가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졌습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모든 고정 관념을 버려버리고, 모든 감정에도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산다」는 문제를 탐구해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불교는 붓다의 위대한 지혜로 쉽게 말한 것이지만, 욕구에 빠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마저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면 내가 지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런 이유로부터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 나는 매우 깊고, 발견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평온하고, 뛰어난, 이론을 뛰어넘은, 완벽한 (것이기에), 현자에게는 이해 가능한 진리를 체득했다.」
(Adhigato kho me a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panīto atakkāvacaro nipuno pandita vedanīyo - Majjhima Nikāya 1권 167p)
오래된 친구인 5명의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시기 위해서 길을 떠난 부처님은 도중에서 우빠까 유행자를 만났습니다.
괴로움을 넘어서서 고요한 부처님을 본 우빠까는 놀라면서,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부처님은「나는 모든 것을 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의 현상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갈애를 멸하여서, 해탈했습니다. 스스로 혼자 (힘으로 진리를) 발견했으므로 누구를 스승으로 하겠습니까?」
(sabbāhibhū sabbavidū'ham asmi,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sabbaṁ jaho taṇhākkhayo vimuto, sayaṁ abhiññāya kaṁ uddiseyyaṁ. ) (Majjhima Nikāya 1권 171p)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Upaka는 스승의 이름을 가르쳐 줄거라고 기대하며 물었으므로, 부처님의 말의 의미를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는 알지 않았다」라고 알아차리고, 다시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나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 나와 동일한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사람이 신앙하고 있는 신들 중에서도 이 세상에서 나와 필적할 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아라한(완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이상 없는 스승은 나인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정자각자(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사람)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안온하게 되었습니다. 해탈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시마을로 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지만, Upaka는 쇼크로 경직된 채로 서 있었습니다.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고귀한 깨달음을 자신 한 명의 힘으로 얻었다고 들었으면, 「제발 나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러나 Upaka는 자신의 정신 상태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anantajino라고 칭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ananta는 무한이라는 의미입니다. jino는 승리자입니다. 부처님을 패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부처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anantajino는 불후 불멸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anantajino라는 말을 사용해 더욱 설명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란, 번뇌를 소멸한 나와 같은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나는 모든 악에 이겼습니다. 따라서 jino라고 칭합니다.」 그런데도 Upaka는 「그럴지도 모르지요...」라고 수긍한 채 떠나갔습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았는데 전혀 이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실패인가, Upaka가 너무 어리석었던가, 의문이 남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후에 Upaka가 출가하는 것으로 풀릴 것입니다. 부처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누구의 마음에도 그 완전한 평온함이 새겨집니다. Upaka도 부처님의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인생에 완전하게 실패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으스대고 뽐냄으로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부처님은 올바른 길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사람은 근거가 없는 모든 것을 의지가 된다고 착각하며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도 전혀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은 평온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괴로움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부처님은 평온함의 오아시스를 주고 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이며 일체지자인 부처님을 기쁨을 가지고 생각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행복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시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붓다의 가르침의 유효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붓다의 날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에 의해 진정한 행복에의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붓다의 출현은 행복이어라!
[출처] 붓다는 어디에 계시는가! (20090503. 붓다의 날 법문교재) (붓다의길따라선원) | 작성자 붓다의길따라
웨사카 붓다의 날 (20100527)
5월 28일 만월의 날에 불기는 2553년으로 바뀝니다. 테라와다 불교도에게 있어 이날은 365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하루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행에 힘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대하게 붓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한국의 전통과 달리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탄생도,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된 것(성도)도, 열반에 들어가신 것도, 함께 축하합니다. 역사적인 3개의 사건이 같은 날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어 함께 축하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서기 5월의 만월에 해당하는 날은 음력으로는 Vesākha달이므로 축제의 이름도 웨사카 축제라고 합니다. 불교도의 사이에서는 붓다의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류가 발견할 수 없었던 괴로움을 넘는 방법, 궁극적인 지혜의 길을 붓다는 발견했습니다.
붓다의 탄생에 대해서는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 (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 라고 경전에 쓰여 있습니다.
끝없이 윤회하며 괴로워하고 있던 생명에서, 윤회를 끝내는 「마지막」의 탄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편력해도 깨달을 수가 없었던 붓다는 중도를 발견해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 깨달음에 대해서는 「Khīnā jāti;생은 멸하고, kataṁ karanīyaṁ;이루어야 할 것은 이루어 끝냈으며, vusitaṁ brahma cariyaṁ;수행은 완성하여, akuppā me cetovimutti;마음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수행을 완성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마지막」의 탄생인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괴로움을 넘어 해탈하여 45년간 부처님은 전도를 하셨습니다. 마음에 괴로움은 없었지만 육체를 갖고 있었으므로 병이 들거나 때로는 굶주리거나하는 육체적 근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80세가 되고 나서 웁빠왓타나라는 곳에서 부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서 신체의 괴로움도 끝났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Bhagavā parinibbâyi (세존이 열반에 들어가셨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Pari는 「완전하게」라는 의미입니다. Nibbāyati는 「소멸한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Parinibbāyi는 「완전하게 소멸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불길이 사라졌다고 하는 의미로 유명한 「열반」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처님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또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마지막」의 탄생입니다.
「마지막」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탄생도, 성도도, 입멸도, 생명으로서의 「마지막」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Vesākha달의 만월에 일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붓다가 나타난 것의 중대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경의를 가지고 축하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5월 28일은 승리의 날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물리쳐 이긴 기념일입니다. 인류에게 행복의 길이 열린 더없이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불기의 숫자도 이날로 바뀝니다. 불교도의 정월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여러 사람이 태어나 사상가, 발명가, 종교가도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 주려고 모두 노력했지만, 인류가 사는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 봐도 「죽고 나서 천국…」등의 확인할 수 없는 약속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는 괴로움에는 대답이 없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류는 새로운 괴로움이나 문제를 만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연까지 파괴하고 살기 어려운 환경까지 만들게 됩니다. 인간이 목표하는 행복의 길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고생해도 「마지막」의 탄생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걷는 길(탐진치를 채우는 욕구의 길)은 새로운 괴로움을 만드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삶의 방법에 좋아할 것도 없고, 부정할 것도 없고, 보다 뛰어난 초월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를 비로소 부처님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붓다가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졌습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모든 고정 관념을 버려버리고, 모든 감정에도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산다」는 문제를 탐구해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불교는 붓다의 위대한 지혜로 쉽게 말한 것이지만, 욕구에 빠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마저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면 내가 지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런 이유로부터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 나는 매우 깊고, 발견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평온하고, 뛰어난, 이론을 뛰어넘은, 완벽한 (것이기에), 현자에게는 이해 가능한 진리를 체득했다.」
(Adhigato kho me a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panīto atakkāvacaro nipuno pandita vedanīyo - Majjhima Nikāya 1권 167p)
오래된 친구인 5명의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시기 위해서 길을 떠난 부처님은 도중에서 우빠까 유행자를 만났습니다.
괴로움을 넘어서서 고요한 부처님을 본 우빠까는 놀라면서,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부처님은「나는 모든 것을 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의 현상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갈애를 멸하여서, 해탈했습니다. 스스로 혼자 (힘으로 진리를) 발견했으므로 누구를 스승으로 하겠습니까?」
(sabbāhibhū sabbavidū'ham asmi,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sabbaṁ jaho taṇhākkhayo vimuto, sayaṁ abhiññāya kaṁ uddiseyyaṁ. ) (Majjhima Nikāya 1권 171p)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Upaka는 스승의 이름을 가르쳐 줄거라고 기대하며 물었으므로, 부처님의 말의 의미를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는 알지 않았다」라고 알아차리고, 다시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나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 나와 동일한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사람이 신앙하고 있는 신들 중에서도 이 세상에서 나와 필적할 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아라한(완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이상 없는 스승은 나인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정자각자(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사람)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안온하게 되었습니다. 해탈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시마을로 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지만, Upaka는 쇼크로 경직된 채로 서 있었습니다.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고귀한 깨달음을 자신 한 명의 힘으로 얻었다고 들었으면, 「제발 나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러나 Upaka는 자신의 정신 상태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anantajino라고 칭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ananta는 무한이라는 의미입니다. jino는 승리자입니다. 부처님을 패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부처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anantajino는 불후 불멸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anantajino라는 말을 사용해 더욱 설명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란, 번뇌를 소멸한 나와 같은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나는 모든 악에 이겼습니다. 따라서 jino라고 칭합니다.」 그런데도 Upaka는 「그럴지도 모르지요...」라고 수긍한 채 떠나갔습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았는데 전혀 이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실패인가, Upaka가 너무 어리석었던가, 의문이 남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후에 Upaka가 출가하는 것으로 풀릴 것입니다. 부처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누구의 마음에도 그 완전한 평온함이 새겨집니다. Upaka도 부처님의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인생에 완전하게 실패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으스대고 뽐냄으로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부처님은 올바른 길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사람은 근거가 없는 모든 것을 의지가 된다고 착각하며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도 전혀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은 평온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괴로움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부처님은 평온함의 오아시스를 주고 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이며 일체지자인 부처님을 기쁨을 가지고 생각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행복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시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붓다의 가르침의 유효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붓다의 날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에 의해 진정한 행복에의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붓다의 출현은 행복이어라!
[출처] 붓다는 어디에 계시는가! (20090503. 붓다의 날 법문교재) (붓다의길따라선원) | 작성자 붓다의길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