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붓다, 담마, 상가에 귀의합니다 _()_
한국테라와다불교 재가운영위원회에서는
시마홀 및 상가공동체(집중수행처)를 위한 모연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정식 모연에 앞서 시마홀과 상가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는 법문들을 발췌하여 10차례에 걸쳐 공유드립니다.
테라와다불교가 한국에 뿌리내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_()_
모연 관련 문의: 사무총장 담마락키따 010-4242-5140
**
sīmā-(금강)계단, 결계(석)
결계, 경계, 계단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결계 안에서 출가 비구들의 계율에 관련되는 의식이 거행되므로 vinaya sīmā(위나야 시-마-)라고도 말합니다.
한 달에 2번 출가한 비구들은 계율을 합송하는 행사인 uposatha(우뽀-사타)를 실시합니다. 우리말로 포살이라고 알려진 것입니다. 포살행사는 반드시 결계 안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결계를 uposatha sīmā(우뽀-사타 시-마-)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uposatha라는 것은 부처님 시대에는 수행의 날을 의미했습니다.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한 달에 4번(초생달, 만월, 상현·하현의 반달) 경제활동을 멈추고 자신의 신앙에 적절한 수행을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여 불교의 재가 신자도 한 달에 4번 속세적인 생활을 일단 중단하고 수행을 하였습니다. 출가 비구는 일생 동안 수행하는 것이므로 수행하는 날을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으로서 한 달에 2번 계율을 상기하는 포살행사가 부처님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결계인 계단을 무대로 행해지는 다양한 의식 중에서도 이 포살행사는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계단이라고 하는 것은 비구들이 다섯 명 이상 모여 앉는 정도의 면적을 가진 토지입니다. 그러나 다섯 명이 빠듯하게 앉을 수 있는 좁은 장소는 계단으로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구 계율 중에서 비교적 무거운 13가지 계율이 깨어졌을 경우 상가는 그 파계 비구에 대해서 동료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별주하는 것을 명령합니다.
참회의 기간이 끝나면 별주를 해제하고 상가의 동료에게 허가를 청하는 행사를 실시합니다. 이 2개의 행사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비구들 20명 이상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단의 최소 크기는 25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한 사람이 앉는 크기란 서로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손을 뻗으면 다른 비구를 잡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 계단의 조건
부처님의 시대에는 비구들은 재산을 가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토지를 소유할 것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인도에서는 성자·출가자들이 모이는 장소는 도처에 있었습니다. 또 부유한 사람들이나 국왕은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토지나 공원 등을 수행자들에게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개인 재산이 아닌 숲이나 공원 등의 국유지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장소에 비구들은 표시를 하여 자신들이 의식을 거행하는 결계(계단)로서 인정했습니다. 비록 계단 인정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토지는 비구들의 사유재산은 아닙니다. 계단에서의 의식이 끝나면 비구들은 자신들의 거주처로 돌아갑니다. 2주가 지난 후에 또 그 결계의 장소에서 모입니다.
초기에는 계단으로 인정된 토지는 원래 서로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어느 공원에 여러 명이 놀러 가서 한쪽에 전기밥통을 올려놓은 매트를 깔아 즐겁게 놀고 난 후 매트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놀고 있는 동안은 매트 안으로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었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위하여 토지를 보시하거나 절을 만들거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우도 신도들이 보시한 토지나 건물은 비구들의 개인 재산으로 할 수 없고, 상가라고 하는 출가 조직 전체의 공유재산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에 연중 의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상설 건물을 지어 계단으로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태국·버마·스리랑카 등의 전통적인 절을 보면 경내의 한곳에 건물을 지어 계단으로서 승인하고 있습니다.
계단으로 인정되는 장소는 비구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가 아니면 곤란합니다. 또한 상가나 유흥가, 도박장, 춤추고 즐기는 곳은 계단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런 곳은 비구들의 마음이 더러워질 염려가 있고, 계목을 송출할 때 놀고 있는 사람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재가 신자가 토지 사용을 허가해 준다면 그런 토지에서도 계단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자가 죽고 나서 상속하는 사람이 비구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면 그 계단은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 계단이 왜 필요한가?
출가 비구는 속세를 떠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출가에 의해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구는 상가라고 하는 조직의 일원입니다. 상가란 비구들 모두를 나타내는 고유 명사입니다. 계율적으로는 비구가 네 명 이상 모이면 saṅgha(상가)인 것입니다. 세 명만 모이면 gaṇa(가나)이고, 두 명 이하는 개인입니다.
출가한 비구의 생활 습관의 관리, 절의 재산 관리, 사람 간(비구들끼리 혹은 비구와 재가자, 그 모두)의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에 조정을 행하는 것, 비구들에게 계율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경우의 해결, 위반한 계율을 참회토록 하는 것, 재가자를 비구로서 출가시키는 것, 출가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비구들을 추방하는 것, 등의 의무는 상가가 실시합니다. 개개인 비구에 대해서 상가는 절대적인 권한·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비구 한 사람 한 사람은 상가의 일원인 것입니다.
상가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로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컨대 상가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조직인 것입니다.
세속 생활과 멀어진 무욕·무집착의 조직이므로 상가의 의식·의무 등은 출가자만으로 실시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타종교의 사람이나 재가 신도는 상가의 고유 행사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국회의 운영 위원회와 같은 것입니다.
일견 배타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배타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느 비구가 밤에 식사를 했다고 합시다. 상가는 계율위반으로 그것을 경고합니다. 그 회의에 일반인이 들어가 있다면 어찌될까요? 「밤에 배가 고파 밥을 먹은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재가자가 말한다면 상가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출가 비구의 계율이기에 지키지 않은 사람은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저기서 반대 의견이 난무하면 만장일치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비구도 자신에게 아군이 있다고 판단하면 오만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구름 위의 이야기가 됩니다. 어쩌면 타 종교인들은 계획적으로 상가를 곤란하게 할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같은 가치관, 같은 목표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사이좋게 온화하게 함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가는 모두 같은 가치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므로 그 조직 속의 관리에 대해서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게 한 것입니다.
• 계단의 중요성
불교는 인류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세상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세계적인 종교가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군사적 힘에 의해 세계에 넓힐 수 있었던 종교입니다. 교리적으로 봐도, 그 기원을 봐도 민족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에 의해 말해진 진리는 처음부터 범천·신들·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에 들어맞는 가르침으로서 빛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아직껏 붓다의 가르침(불교) 만이 유일한 세계종교인 것입니다. 무기를 가지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위협하지 않고, 철저한 자애에 기초를 두고 2600년간 함께 하여 왔습니다. 인류에게 평화로운 삶의 방법을 가르쳐 왔습니다. 세계에 유례없는 훌륭한 불교문화도 쌓아 올렸습니다.
어떤 권력도 재력도 가지지 않은 부처님 제자들이 지금까지 행하여온 결과는 기적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 그 자체이므로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남은 것입니다.
불교 전도의 역사 속에서 출가자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시켜는 데에는 출가자의 노력에 의한 결과인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해도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도 붓다에 의해 말해진 진리는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어떠한 시대의 사람에게도 마음의 평온함을 주는 것, 살아가는 길을 가리키는 것을 불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가자가 이 중대한 의무를 담당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재가자는 불교보다 먼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가족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가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있는 것은 그 사회에 불교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가 살아 있는 것은 인류에게 평화와 평온함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출가자의 생명은 상가에 의해 지켜질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출가자를 만드는 일도 상가 이외에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승려의 옷을 입는다 해도 출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단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자가 새롭게 탄생하는 장소입니다. 계율을 어겼으면 그 출가자는 정신적으로 약해집니다. 그것을 참회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도 계단이므로 출가자의 병원과 같습니다. 출가 세계의 국회 의사당도 계단인 것입니다.
한국에 전래한 불교의 대부분은 불멸 500년 후 새로운 해석 아래 번성한 대승 불교가 중국 등을 거쳐 전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전해진 불교는 천 수백 년의 역사를 거쳐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종파 불교가 한국 불교문화의 꽃을 피워 왔습니다.
한편 스리랑카, 태국, 버마,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2500여 년간에 걸쳐 부처님 가르침을 계승하려고 노력해 온 테라와다 불교가 정통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계속 살아 있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 안에서도 종파 불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부처님 가르침의 숨결을 직접 접하려고 하는 승속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전하는 담당자인 출가 승려의 출가 의식이나 매월 2번의 계율 의식(포살)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장소인 정통 「계단」이 한국에는 없어서 그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한국 테라와다 불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단 추진과 그 선포식에 관심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초대 이사장 아짠 빤냐와로 대장로 스님,
2009년 5월 20일 시마(sīmā) 법문 中
전문:
https://blog.naver.com/keh6843/223050041758
거룩하신 붓다, 담마, 상가에 귀의합니다 _()_
한국테라와다불교 재가운영위원회에서는
시마홀 및 상가공동체(집중수행처)를 위한 모연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정식 모연에 앞서 시마홀과 상가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는 법문들을 발췌하여 10차례에 걸쳐 공유드립니다.
테라와다불교가 한국에 뿌리내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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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 관련 문의: 사무총장 담마락키따 010-4242-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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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īmā-(금강)계단, 결계(석)
결계, 경계, 계단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결계 안에서 출가 비구들의 계율에 관련되는 의식이 거행되므로 vinaya sīmā(위나야 시-마-)라고도 말합니다.
한 달에 2번 출가한 비구들은 계율을 합송하는 행사인 uposatha(우뽀-사타)를 실시합니다. 우리말로 포살이라고 알려진 것입니다. 포살행사는 반드시 결계 안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결계를 uposatha sīmā(우뽀-사타 시-마-)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uposatha라는 것은 부처님 시대에는 수행의 날을 의미했습니다.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한 달에 4번(초생달, 만월, 상현·하현의 반달) 경제활동을 멈추고 자신의 신앙에 적절한 수행을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여 불교의 재가 신자도 한 달에 4번 속세적인 생활을 일단 중단하고 수행을 하였습니다. 출가 비구는 일생 동안 수행하는 것이므로 수행하는 날을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으로서 한 달에 2번 계율을 상기하는 포살행사가 부처님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결계인 계단을 무대로 행해지는 다양한 의식 중에서도 이 포살행사는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계단이라고 하는 것은 비구들이 다섯 명 이상 모여 앉는 정도의 면적을 가진 토지입니다. 그러나 다섯 명이 빠듯하게 앉을 수 있는 좁은 장소는 계단으로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구 계율 중에서 비교적 무거운 13가지 계율이 깨어졌을 경우 상가는 그 파계 비구에 대해서 동료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별주하는 것을 명령합니다.
참회의 기간이 끝나면 별주를 해제하고 상가의 동료에게 허가를 청하는 행사를 실시합니다. 이 2개의 행사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비구들 20명 이상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단의 최소 크기는 25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한 사람이 앉는 크기란 서로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손을 뻗으면 다른 비구를 잡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 계단의 조건
부처님의 시대에는 비구들은 재산을 가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토지를 소유할 것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인도에서는 성자·출가자들이 모이는 장소는 도처에 있었습니다. 또 부유한 사람들이나 국왕은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토지나 공원 등을 수행자들에게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개인 재산이 아닌 숲이나 공원 등의 국유지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장소에 비구들은 표시를 하여 자신들이 의식을 거행하는 결계(계단)로서 인정했습니다. 비록 계단 인정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토지는 비구들의 사유재산은 아닙니다. 계단에서의 의식이 끝나면 비구들은 자신들의 거주처로 돌아갑니다. 2주가 지난 후에 또 그 결계의 장소에서 모입니다.
초기에는 계단으로 인정된 토지는 원래 서로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어느 공원에 여러 명이 놀러 가서 한쪽에 전기밥통을 올려놓은 매트를 깔아 즐겁게 놀고 난 후 매트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놀고 있는 동안은 매트 안으로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었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위하여 토지를 보시하거나 절을 만들거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우도 신도들이 보시한 토지나 건물은 비구들의 개인 재산으로 할 수 없고, 상가라고 하는 출가 조직 전체의 공유재산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에 연중 의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상설 건물을 지어 계단으로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태국·버마·스리랑카 등의 전통적인 절을 보면 경내의 한곳에 건물을 지어 계단으로서 승인하고 있습니다.
계단으로 인정되는 장소는 비구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가 아니면 곤란합니다. 또한 상가나 유흥가, 도박장, 춤추고 즐기는 곳은 계단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런 곳은 비구들의 마음이 더러워질 염려가 있고, 계목을 송출할 때 놀고 있는 사람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재가 신자가 토지 사용을 허가해 준다면 그런 토지에서도 계단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자가 죽고 나서 상속하는 사람이 비구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면 그 계단은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 계단이 왜 필요한가?
출가 비구는 속세를 떠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출가에 의해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구는 상가라고 하는 조직의 일원입니다. 상가란 비구들 모두를 나타내는 고유 명사입니다. 계율적으로는 비구가 네 명 이상 모이면 saṅgha(상가)인 것입니다. 세 명만 모이면 gaṇa(가나)이고, 두 명 이하는 개인입니다.
출가한 비구의 생활 습관의 관리, 절의 재산 관리, 사람 간(비구들끼리 혹은 비구와 재가자, 그 모두)의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에 조정을 행하는 것, 비구들에게 계율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경우의 해결, 위반한 계율을 참회토록 하는 것, 재가자를 비구로서 출가시키는 것, 출가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비구들을 추방하는 것, 등의 의무는 상가가 실시합니다. 개개인 비구에 대해서 상가는 절대적인 권한·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비구 한 사람 한 사람은 상가의 일원인 것입니다.
상가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로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컨대 상가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조직인 것입니다.
세속 생활과 멀어진 무욕·무집착의 조직이므로 상가의 의식·의무 등은 출가자만으로 실시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타종교의 사람이나 재가 신도는 상가의 고유 행사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국회의 운영 위원회와 같은 것입니다.
일견 배타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배타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느 비구가 밤에 식사를 했다고 합시다. 상가는 계율위반으로 그것을 경고합니다. 그 회의에 일반인이 들어가 있다면 어찌될까요? 「밤에 배가 고파 밥을 먹은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재가자가 말한다면 상가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출가 비구의 계율이기에 지키지 않은 사람은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저기서 반대 의견이 난무하면 만장일치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비구도 자신에게 아군이 있다고 판단하면 오만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구름 위의 이야기가 됩니다. 어쩌면 타 종교인들은 계획적으로 상가를 곤란하게 할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같은 가치관, 같은 목표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사이좋게 온화하게 함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가는 모두 같은 가치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므로 그 조직 속의 관리에 대해서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게 한 것입니다.
• 계단의 중요성
불교는 인류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세상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세계적인 종교가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군사적 힘에 의해 세계에 넓힐 수 있었던 종교입니다. 교리적으로 봐도, 그 기원을 봐도 민족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에 의해 말해진 진리는 처음부터 범천·신들·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에 들어맞는 가르침으로서 빛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아직껏 붓다의 가르침(불교) 만이 유일한 세계종교인 것입니다. 무기를 가지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위협하지 않고, 철저한 자애에 기초를 두고 2600년간 함께 하여 왔습니다. 인류에게 평화로운 삶의 방법을 가르쳐 왔습니다. 세계에 유례없는 훌륭한 불교문화도 쌓아 올렸습니다.
어떤 권력도 재력도 가지지 않은 부처님 제자들이 지금까지 행하여온 결과는 기적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 그 자체이므로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남은 것입니다.
불교 전도의 역사 속에서 출가자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시켜는 데에는 출가자의 노력에 의한 결과인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해도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도 붓다에 의해 말해진 진리는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어떠한 시대의 사람에게도 마음의 평온함을 주는 것, 살아가는 길을 가리키는 것을 불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가자가 이 중대한 의무를 담당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재가자는 불교보다 먼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가족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가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있는 것은 그 사회에 불교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가 살아 있는 것은 인류에게 평화와 평온함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출가자의 생명은 상가에 의해 지켜질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출가자를 만드는 일도 상가 이외에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승려의 옷을 입는다 해도 출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단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자가 새롭게 탄생하는 장소입니다. 계율을 어겼으면 그 출가자는 정신적으로 약해집니다. 그것을 참회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도 계단이므로 출가자의 병원과 같습니다. 출가 세계의 국회 의사당도 계단인 것입니다.
한국에 전래한 불교의 대부분은 불멸 500년 후 새로운 해석 아래 번성한 대승 불교가 중국 등을 거쳐 전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전해진 불교는 천 수백 년의 역사를 거쳐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종파 불교가 한국 불교문화의 꽃을 피워 왔습니다.
한편 스리랑카, 태국, 버마,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2500여 년간에 걸쳐 부처님 가르침을 계승하려고 노력해 온 테라와다 불교가 정통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계속 살아 있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 안에서도 종파 불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부처님 가르침의 숨결을 직접 접하려고 하는 승속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전하는 담당자인 출가 승려의 출가 의식이나 매월 2번의 계율 의식(포살)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장소인 정통 「계단」이 한국에는 없어서 그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한국 테라와다 불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단 추진과 그 선포식에 관심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초대 이사장 아짠 빤냐와로 대장로 스님,
2009년 5월 20일 시마(sīmā) 법문 中
전문:
https://blog.naver.com/keh6843/22305004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