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초기불교 문헌(1)/위원장 냐나로까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551

2013. 5. 9. 법문


초기불교 문헌-요약


2. 초기불교의 문헌


불교는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기록한 문헌이 불교의 경전이며 경전은 경장, 율장, 논장으로 구성된다. 그러면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인 문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는가를 살펴보자.


2.1. 불교 경전의 성립


경전은 붓다의 가르침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붓다께서는 29세에 사마나가 되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셨고, 35세에 큰 깨달음을 성취하신 후 80세에 대열반(parinibbāna)에 드시기 전까지 45년 동안 가르침을 펼치셨다. 그러나 그 당시에 붓다의 말씀이 게송 형식으로 구전되어 왔을 뿐 체계 있게 정리되어 기록되어지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형태의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이 제1차 결집회의에서 형성되었던 아니든, 신심 깊은 장로(Māhathera)들이 불멸(佛滅) 후 얼마 안 있어 함께 모여 교리와 실천수행에 관하여 논의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붓다의 추종자들 가운데 교리 문제에 대하여 논쟁이 일어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마가다(Magada) 국의 라자가하(Rājagaha, 왕사성) 칠엽굴에서 상가띠(Saṅghati, 結集)라 명명되어진 제 1차 결집이 개최되었다. 


상가띠(saṅghati)라는 말은 원래 ‘합송(合頌)’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그 당시 역시 붓다의 가르침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500 아라한의 대중이 모였을 때 가장 학식이 높았던 까사빠존자(Kasapa-Thera)가 논장(論藏, Abhidhamma-pițaka)에 기술된 내용을 낭송하였다. 대중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며 계율 제일이라고 일컬어졌던 우바리존자(Upāli-Thera)가 율장(律藏, Vīnaya pițaka)에 나타난 수행상의 기율과 상가(Saṅgha, 승단)의 규칙을, 그리고 오랫동안 붓다 가까이에서 붓다를 시봉하였던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아난다존자(ĀnandaThera)가 붓다의 설법 가운데 말해진 이야기와 우화를 담고 있는 경장(經藏, Suttapițaka)을 낭송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붓다의 가르침인 삼장을 담은 경전과 이에 대한 주석이 오랫동안 스승과 제자의 계통적인 연속을 통하여 현명한 비구들에 의해서 구전되었다.


제 1차 상가띠(Saṅghiti)가 있은 후 약 100년이 지나서 웨살리(Vesālī)에서 제 2차 상가띠가 개최되었다. 이 제 2차 결집에서는 상가의 규칙에 관한 율장의 이론과 실천이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며, 어떤 형태의 완화안(緩和案)이 허용되어야 하는가의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격론 끝에 보수적인 장로들의 상좌부가 완화안을 압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제 2차 상가띠에서 장로들은 열 가지(十事)를 비법(非法)으로 단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패배한 진보파인 대중부는 별도로 마하상가띠(Māhasaṅgatī)라고 불리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고따마붓다(Gotama Buddha)에 의해 일어난 지 약 200년경 후에 18부로 나누어 졌으며, 이들 모두는 각기 자신들이 근본적인 믿음이라고 주장하였다. 


불멸 후 250년 경에 마우리야(Mauriya)왕조의 아소카왕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는 놀라운 확장을 하게 되었다. 불멸 후 약 300년 동안 북 인도 지역 종교였던 불교가 아소카왕의 열의에 찬 노력을 통하여 세계 종교로 부상하였다. 그는 광대한 왕국을 통하여, 그는 석주를 세우고 자신의 칙령을 새기게 하여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인도 각지에 포교사를 파견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에 불교는 카슈미르와 스리랑카에 들어갔으며, 점차 네팔과 티벳, 중국, 한국, 일본, 몽골 등으로 전파되었다. 


아소카왕은 당시 불교 속에 스며드는 불순한 관습을 우려하여 불교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불교 승단의 정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불교를 정통적인 불교로 지키기 위해 그리고 붓다의 교설을 보다 정교한 형태로 체계화하기 위하여 Asoka 대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빠따리뿌뜨라(Pataliputra)에서 목갈리(Moggalī)의 아들 띠싸(Tissa)의 주관 하에 제 3차 상가띠(Saṅgatī, B.C241년)가 개최되었다. 정통을 숭상하는 빅쿠들이 붓다의 참된 가르침이 정확한 교의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결집을 위해 모인 것이다. 


아소카왕의 아들(혹은 동생)이며, 띠싸 장로(Tissa Thera)의 제자인 마힌다 장로(Mahinda Thera)가 B.C 80년에 스리랑카로 들어가 왓따가마니(Vattagamani)왕의 후원을 입고 싱갈리어의 문자로 서책의 형태로 기록된 경전이 최고(最古)의 빠리(Pāli) 대장경인 것이다.


A.D319년에 득세하기 시작한 굽따(Gupta) 왕조 하에서 브라만(Brahman)교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대승불교가 적극적으로 일어나면서 브라만교의 분위기를 일부 수용하며, 붓다를 하나의 신격화시키는 경향이 있게 되었다.


여러 곳에 불상이 세워지고 신격화된 붓다에 대한 숭배가 성행하게 되었다. 카니시카(Kaniska)왕과 동시대인 나가르주나(Nagarjuna,龍樹)는 중론(中論)과 더불어 대승불교를 확장하는데 이론적인 공헌을 하였다. 초기불교의 쇠퇴, 대승불교의 흥기, 브라만교의 부흥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아진다. 카니시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판자브의 자란다르(Jalandhar)에서 대승불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결집이 열리는데, 이 결집에서는 대승불교는 이 회의을 통하여 결집된 경전을 따르게 되었다. 이 때 기록을 위하여 사용된 문자는 빠리(Pāli)어 대신에 산스크리뜨(Sanscrit)어, 梵語가 채택되었다.


1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