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사
1. 불교 개론
2. BC 6세기 불교의 문화적 배경
3. 부처님의 탄생·출가·성도·입멸 시기
4. 부처님 시대의 왕들
5. 제 1차 결집
6. 제 2차 결집
7. 제 3차 결집
8. 스리랑카에서 Mahinda 장로의 역할
9. BC 3세기~BC 1세기 스리랑카의 불교 발달사
10. 제 4차 결집 - 불교 경전의 문자화
11. 테라와다 불교의 빨리어와 주석서 문헌의 중요성
12. 동남아시아의 불교 전파
13. 중앙아시아의 불교 전파
14. 제 5차 결집 · 제6차 결집
15. 각국의 불교 개론
16.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
1. 불교 개론
BC 6세기에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는 아소까 왕 시대인 BC 3세기부터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남쪽으로는 테라와다 불교가 스리랑카를 통해서 태국, 버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으로 퍼졌고, 서북쪽으로는 테라와다와 길을 달리한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북인도, 티벳까지 전파된 후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길을 달리하여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불교를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부르고 있지만, 소승불교라는 용어는 1956년 세계 불교도 회의에서 앞으로 일체 쓰지 않기로 결의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스리랑카, 태국, 버마,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 전파된 불교를 지칭하는 데는 장로/상좌/빨리/남방/초기/근본/테라와다 불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우리 교단에서는 테라와다 불교라고 통일하였습니다).
히나야나(소승)불교라는 말은 적절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테라와다의 지류, Sarvāstivāda(설일체유부) 종파를 지칭한 마하야나(대승) 학자들에 의해 창작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불교이기도 합니다. (cf. 설일체유부 종파는 시간에 대한 가르침을 놓고 논리적 대립을 하다 테라와다로부터 갈라졌습니다. 테라와다 불교도가 현재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설일체유부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불교에는 3가지의 보물이 있습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입니다.
붓다는 부처님, 담마는 진실한 가르침, 여기까지는 완벽한데, 상가는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나 아라한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수행하는 아직 완전하게 깨닫지 않은 출가자들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출가자 모두를 포함하여 상가라고 합니다. 깨닫기 위한 시스템과 재가 신자가 보시를 해서 공덕을 쌓기 위한 복전으로서는 완벽하지만, 승단의 전원이 완벽하게 깨달음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승단(상가)은 자치 조직입니다. 승려 개개인이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에 의지하여 몸과 말과 마음을 지켜 조심해야 하지만,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계율에 의거해 승단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합니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종교적 자치 조직을 인정하여 왔습니다. 불교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종교는 국가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인도의 문화와 관습으로서 종교인이나 승단에 대해서는 국가와 국민들은 최소한의 보호(보시라고 하는 형태)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종교인들 또한 국가나 국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국가의 문제에 대해 참견하지 않고, 상담을 요청받았을 때에만 조언할 정도였습니다.
붓다와 담마와 마찬가지로 상가도 보물에 속합니다. 국가나 국민과 관계를 가지면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며 붓다의 담마를 변함없이 지키고 전하기에 상가라는 보물이 불교를 지켜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붓다의 담마인 부처님의 불교는 현재도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온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라와다 상가에서 확실히 지키며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 지역의 정부나 재가 신자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지만 그 분의 가르침을 변형하지 않고 확실히 지키고 있기에 이 전통을 따르는 불교를 테라와다 불교라고 말합니다. 이런 불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졌고 그 후 동남아시아에 차례차려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대승 불교에는 상가라는 보물이 없습니다. 기원 전 후부터 인도에서는 대승경전이 창작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붓다·담마·상가라는 삼보에 예경드리는 본래의 불교와는 이질적인 것입니다. 출처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법보로서의 대승경전과 거기에서 설명하는 불보는 위설이든 창작이든 존재하지만, 그것을 지켜 전해야할 승보인 승단과 승단을 보호하고 유지해야 할 계율이 없었습니다. 경전만이 돌연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경전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느 부류의 승단에 속하는 승려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승경전은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면면히 전하며 배우는 사자상속의 구전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서적의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은 불교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수입 문물과 함께 대승경전과 그것을 반입한 서역이나 인도의 「승려」를 받아들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대승 불교였던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승경전이 불교였던 것입니다. 붓다·담마·상가의 삼보로서가 아니라, 인도·서역지역의 가르침으로서의 법과 대승경전만이 들어 왔습니다. 중국에 있어서의 불교는 서적으로 전해진 다른 나라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승단으로서 성립되지 않은 인도·서역의 대승의 「승려」를 중국에서는 서방 문화를 전하러 온 외교관처럼 취급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국가의 귀빈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국에 온 외국인 기술자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불교와 국가가 거리를 유지하며 대등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외래의 불교와 승려가 국가 체제 안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나 「승려」의 대우는 국가나 통치자의 시정방침에 좌우되게 됩니다. 때로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대우받기도 하고, 때로는 외래의 위험한 사상으로 낙인 되어 배격 되었습니다. 중국 불교는 가르침도 「승려」도 나라에 예속된 나라의 기관의 하나로서 다루어졌습니다.
그런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서기 4세기와 6세기에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됩니다. 이들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불교는 수입되었기에 국가의 관리아래 있는 종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대승 불교는 동아시아에 퍼지게 됩니다.
이런 불교의 2가지 흐름은 150여년전부터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 불교는 지금 각각의 지역에 조금씩 혼합되며 퍼지고 있습니다.
같은 불교이면서 각각 다른 길을 걸어 온 2개의 불교는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공통점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며 이런 교류를 통하여 먼 후일 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스리랑카의 불교와 스리랑카식 불교, 태국의 불교와 태국식 불교라고 부를 때 그것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스리랑카의 불교, 태국의 불교라는 말은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수행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스리랑카식 불교, 태국식 불교는 불교의 문화적 관행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리랑카, 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붓다(buddha)라는 말은 그 누구든 깨달음(아라한에 이른 사람)을 이루신 사람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교의 창시자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그 붓다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스리랑카의 불교와 태국의 불교, 버마의 불교가 다르지 않음은 이를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리랑카식 불교는 태국식 불교와 다르고, 버마식 불교와도 다릅니다.
테라와다 불교사
1. 불교 개론
2. BC 6세기 불교의 문화적 배경
3. 부처님의 탄생·출가·성도·입멸 시기
4. 부처님 시대의 왕들
5. 제 1차 결집
6. 제 2차 결집
7. 제 3차 결집
8. 스리랑카에서 Mahinda 장로의 역할
9. BC 3세기~BC 1세기 스리랑카의 불교 발달사
10. 제 4차 결집 - 불교 경전의 문자화
11. 테라와다 불교의 빨리어와 주석서 문헌의 중요성
12. 동남아시아의 불교 전파
13. 중앙아시아의 불교 전파
14. 제 5차 결집 · 제6차 결집
15. 각국의 불교 개론
16.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
1. 불교 개론
BC 6세기에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는 아소까 왕 시대인 BC 3세기부터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남쪽으로는 테라와다 불교가 스리랑카를 통해서 태국, 버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으로 퍼졌고, 서북쪽으로는 테라와다와 길을 달리한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북인도, 티벳까지 전파된 후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길을 달리하여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불교를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부르고 있지만, 소승불교라는 용어는 1956년 세계 불교도 회의에서 앞으로 일체 쓰지 않기로 결의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스리랑카, 태국, 버마,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 전파된 불교를 지칭하는 데는 장로/상좌/빨리/남방/초기/근본/테라와다 불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우리 교단에서는 테라와다 불교라고 통일하였습니다).
히나야나(소승)불교라는 말은 적절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테라와다의 지류, Sarvāstivāda(설일체유부) 종파를 지칭한 마하야나(대승) 학자들에 의해 창작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불교이기도 합니다. (cf. 설일체유부 종파는 시간에 대한 가르침을 놓고 논리적 대립을 하다 테라와다로부터 갈라졌습니다. 테라와다 불교도가 현재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설일체유부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불교에는 3가지의 보물이 있습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입니다.
붓다는 부처님, 담마는 진실한 가르침, 여기까지는 완벽한데, 상가는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나 아라한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수행하는 아직 완전하게 깨닫지 않은 출가자들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출가자 모두를 포함하여 상가라고 합니다. 깨닫기 위한 시스템과 재가 신자가 보시를 해서 공덕을 쌓기 위한 복전으로서는 완벽하지만, 승단의 전원이 완벽하게 깨달음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승단(상가)은 자치 조직입니다. 승려 개개인이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에 의지하여 몸과 말과 마음을 지켜 조심해야 하지만,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계율에 의거해 승단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합니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종교적 자치 조직을 인정하여 왔습니다. 불교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종교는 국가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인도의 문화와 관습으로서 종교인이나 승단에 대해서는 국가와 국민들은 최소한의 보호(보시라고 하는 형태)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종교인들 또한 국가나 국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국가의 문제에 대해 참견하지 않고, 상담을 요청받았을 때에만 조언할 정도였습니다.
붓다와 담마와 마찬가지로 상가도 보물에 속합니다. 국가나 국민과 관계를 가지면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며 붓다의 담마를 변함없이 지키고 전하기에 상가라는 보물이 불교를 지켜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붓다의 담마인 부처님의 불교는 현재도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온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라와다 상가에서 확실히 지키며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 지역의 정부나 재가 신자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지만 그 분의 가르침을 변형하지 않고 확실히 지키고 있기에 이 전통을 따르는 불교를 테라와다 불교라고 말합니다. 이런 불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졌고 그 후 동남아시아에 차례차려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대승 불교에는 상가라는 보물이 없습니다. 기원 전 후부터 인도에서는 대승경전이 창작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붓다·담마·상가라는 삼보에 예경드리는 본래의 불교와는 이질적인 것입니다. 출처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법보로서의 대승경전과 거기에서 설명하는 불보는 위설이든 창작이든 존재하지만, 그것을 지켜 전해야할 승보인 승단과 승단을 보호하고 유지해야 할 계율이 없었습니다. 경전만이 돌연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경전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느 부류의 승단에 속하는 승려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승경전은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면면히 전하며 배우는 사자상속의 구전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서적의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은 불교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수입 문물과 함께 대승경전과 그것을 반입한 서역이나 인도의 「승려」를 받아들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대승 불교였던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승경전이 불교였던 것입니다. 붓다·담마·상가의 삼보로서가 아니라, 인도·서역지역의 가르침으로서의 법과 대승경전만이 들어 왔습니다. 중국에 있어서의 불교는 서적으로 전해진 다른 나라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승단으로서 성립되지 않은 인도·서역의 대승의 「승려」를 중국에서는 서방 문화를 전하러 온 외교관처럼 취급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국가의 귀빈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국에 온 외국인 기술자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불교와 국가가 거리를 유지하며 대등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외래의 불교와 승려가 국가 체제 안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나 「승려」의 대우는 국가나 통치자의 시정방침에 좌우되게 됩니다. 때로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대우받기도 하고, 때로는 외래의 위험한 사상으로 낙인 되어 배격 되었습니다. 중국 불교는 가르침도 「승려」도 나라에 예속된 나라의 기관의 하나로서 다루어졌습니다.
그런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서기 4세기와 6세기에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됩니다. 이들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불교는 수입되었기에 국가의 관리아래 있는 종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대승 불교는 동아시아에 퍼지게 됩니다.
이런 불교의 2가지 흐름은 150여년전부터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 불교는 지금 각각의 지역에 조금씩 혼합되며 퍼지고 있습니다.
같은 불교이면서 각각 다른 길을 걸어 온 2개의 불교는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공통점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며 이런 교류를 통하여 먼 후일 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스리랑카의 불교와 스리랑카식 불교, 태국의 불교와 태국식 불교라고 부를 때 그것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스리랑카의 불교, 태국의 불교라는 말은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수행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스리랑카식 불교, 태국식 불교는 불교의 문화적 관행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리랑카, 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붓다(buddha)라는 말은 그 누구든 깨달음(아라한에 이른 사람)을 이루신 사람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교의 창시자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그 붓다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스리랑카의 불교와 태국의 불교, 버마의 불교가 다르지 않음은 이를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리랑카식 불교는 태국식 불교와 다르고, 버마식 불교와도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