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발단
부처님이 대중에게 탁발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야소다라는 숫도다나 왕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드님이신 싯닷따 왕자는 왕실의 위엄을 갖춘 왕자전용마차를 타고 저녁 산책을 했던 이 길에서 지금 무능한 탁발승처럼 동냥 그릇을 들고 까삘라왓투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왕은 하얗게 질려 허둥지둥 궁 밖으로 나가 부처님이 탁발 그릇을 들고 돌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왕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부처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대중에게 구걸을 합니까? 우리가 스님들을 위하여 음식을 마련해도 될까요?”
“폐하! 이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부처님! 우리는 왕족인 왕 마하 삼마따의 후손이 아니던가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폐하! 당신은 왕의 가문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문에 속해 있습니다. 모든 스님은 대중 탁발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숫도다나 왕에게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웃띳테- 납빠맛제이야, 담망 숫짜리땅짜레-. 담마짜-리 수캉 세-띠, 아스밍 로-께- 빠람히짜. : 일어나라, 깨어 있으라. 그리고 자만하지 말라. 종교적인 삶을 실천하라. 덕을 쌓는 사람만이 현세와 내세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행복한 삶을 이끈다).)
숫도다나 왕은 이 법문을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수다원, 즉 법문을 통해 성인의 길에 들어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으로부터 탁발그릇을 받아 들고 궁으로 모시고 와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셨고, 부처님은 공양 후에 다시 법문을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담망 짜레- 숫짜리땅, 나 땅 둣짜리땅 짜레-. 담마짜-리- 수캉 세-띠, 아스밍 로-께- 빠람히짜. : 도덕적인 생활은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을 가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담마를 진지하게 실천하는 사람만이 현세와 내세에서 행복을 얻는다.)
이 말을 듣고 숫도다나 왕은 일래과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고, 숫도다나 왕의 부인인 빠자빠띠 고따미는 수다원의 단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옆에 가장 중요한 두 제자를 세우고 숫도다나 왕을 뒤 따르게 한 부처님은 탁발 그릇을 가지고 야소다라 의 방으로 갔습니다. 숫도다나왕은 야소다라에 대한 모든 것을 부처님에게 고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짠다낀나라 자따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니그로다라마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궁에선 화려한 의식이 펼쳐졌습니다. 까삘라왓투에 머무는 동안 부처님은 보통 공양을 왕궁에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축제날 부처님은 난다 왕자에게 그의 발우를 들고 부처님을 따라 니그로다라마로 가자고 요청했습니다. 난다는 거기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까삘라왓투에 머문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야소다라는 7살 난 라훌라 왕자를 부처님에게 보내어 부친의 재산 상속을 요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라훌라를 니그로다라마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그 날로 출가 사미의 계를 주었습니다.
라훌라 왕자의 수계식은 사리뿟따 장로의 총 감독 아래 거행된 특별한 의식으로 치뤄졌습니다. 마하목갈라나 장로는 라훌라의 머리를 삭발하고 노란 승복을 입혔습니다. 마하깟사빠 장로는 의식을 치루는 데 있어 마하목갈라나 장로를 도왔습니다. 라훌라는 사리뿟따 장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계를 준 사람의 제자가 된다는 전통에 따라서 8일째 되는 날 부처님이 점심 공양을 위해 왕궁으로 갔을 때 숫도다나 왕은 바라나시 비단옷을 입었던 분이 어떻게 빵수꿀라 찌와라(누더기 옷)를 입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데와따가 와서 싯닷따는 가장 처절한 고행을 하는 동안에 죽었다고 말했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폐하! 왜 그를 믿지 않았습니까?”
“부처님! 내가 왜 믿어야 합니까? 나는 내 아들이 붓다가 되기 전에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독실한 신심을 보여주자 부처님은 왕이 데와따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믿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마하담마빨-라- 자따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숫도다나 왕은 불환과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라자가하로 돌아 온 후에 부처님은 시따와나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까삘라왓투에 머물고 있는 동안 석가종족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사왓띠(사위성)의 유명한 상인 아나따삔디까(급고독장자)가 처음으로 부처님을 만난 곳이 바로 이 숲에서였습니다.
아라한을 이룸
숫도다나 왕은 출가하여 숲에 가지 않고도 죽기 전에 자신의 왕궁에서 아라한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웨살리의 꾸따-가-라살-라-에서 다섯 번째 우안거 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낫타빠까-시니-(버마 주석서)에서는 부처님이 숫도다나 왕이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500명의 스님을 이끌고 까삘라왓투로 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죽어가는 왕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아라한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마하-빠다-나 숫따(장부 14경)는 부처님께서 숫도다나 왕이 자신의 아버지이며 마하마야 왕비가 어머니이고 까삘라왓투가 수도였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죽고 난 후에 빠자빠띠 고따미, 야소다라 그리고 순다리 난다 또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구니가 되기 전에 난다와 라훌라는 이미 비구 스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모든 가족들이 불문에 입문했고 끝내는 생사의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었습니다.
이해의 발단
부처님이 대중에게 탁발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야소다라는 숫도다나 왕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드님이신 싯닷따 왕자는 왕실의 위엄을 갖춘 왕자전용마차를 타고 저녁 산책을 했던 이 길에서 지금 무능한 탁발승처럼 동냥 그릇을 들고 까삘라왓투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왕은 하얗게 질려 허둥지둥 궁 밖으로 나가 부처님이 탁발 그릇을 들고 돌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왕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부처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대중에게 구걸을 합니까? 우리가 스님들을 위하여 음식을 마련해도 될까요?”
“폐하! 이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부처님! 우리는 왕족인 왕 마하 삼마따의 후손이 아니던가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폐하! 당신은 왕의 가문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문에 속해 있습니다. 모든 스님은 대중 탁발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숫도다나 왕에게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웃띳테- 납빠맛제이야, 담망 숫짜리땅짜레-. 담마짜-리 수캉 세-띠, 아스밍 로-께- 빠람히짜. : 일어나라, 깨어 있으라. 그리고 자만하지 말라. 종교적인 삶을 실천하라. 덕을 쌓는 사람만이 현세와 내세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행복한 삶을 이끈다).)
숫도다나 왕은 이 법문을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수다원, 즉 법문을 통해 성인의 길에 들어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으로부터 탁발그릇을 받아 들고 궁으로 모시고 와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셨고, 부처님은 공양 후에 다시 법문을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담망 짜레- 숫짜리땅, 나 땅 둣짜리땅 짜레-. 담마짜-리- 수캉 세-띠, 아스밍 로-께- 빠람히짜. : 도덕적인 생활은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을 가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담마를 진지하게 실천하는 사람만이 현세와 내세에서 행복을 얻는다.)
이 말을 듣고 숫도다나 왕은 일래과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고, 숫도다나 왕의 부인인 빠자빠띠 고따미는 수다원의 단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옆에 가장 중요한 두 제자를 세우고 숫도다나 왕을 뒤 따르게 한 부처님은 탁발 그릇을 가지고 야소다라 의 방으로 갔습니다. 숫도다나왕은 야소다라에 대한 모든 것을 부처님에게 고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짠다낀나라 자따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니그로다라마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궁에선 화려한 의식이 펼쳐졌습니다. 까삘라왓투에 머무는 동안 부처님은 보통 공양을 왕궁에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축제날 부처님은 난다 왕자에게 그의 발우를 들고 부처님을 따라 니그로다라마로 가자고 요청했습니다. 난다는 거기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까삘라왓투에 머문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야소다라는 7살 난 라훌라 왕자를 부처님에게 보내어 부친의 재산 상속을 요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라훌라를 니그로다라마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그 날로 출가 사미의 계를 주었습니다.
라훌라 왕자의 수계식은 사리뿟따 장로의 총 감독 아래 거행된 특별한 의식으로 치뤄졌습니다. 마하목갈라나 장로는 라훌라의 머리를 삭발하고 노란 승복을 입혔습니다. 마하깟사빠 장로는 의식을 치루는 데 있어 마하목갈라나 장로를 도왔습니다. 라훌라는 사리뿟따 장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계를 준 사람의 제자가 된다는 전통에 따라서 8일째 되는 날 부처님이 점심 공양을 위해 왕궁으로 갔을 때 숫도다나 왕은 바라나시 비단옷을 입었던 분이 어떻게 빵수꿀라 찌와라(누더기 옷)를 입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데와따가 와서 싯닷따는 가장 처절한 고행을 하는 동안에 죽었다고 말했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폐하! 왜 그를 믿지 않았습니까?”
“부처님! 내가 왜 믿어야 합니까? 나는 내 아들이 붓다가 되기 전에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독실한 신심을 보여주자 부처님은 왕이 데와따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믿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마하담마빨-라- 자따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숫도다나 왕은 불환과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라자가하로 돌아 온 후에 부처님은 시따와나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까삘라왓투에 머물고 있는 동안 석가종족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사왓띠(사위성)의 유명한 상인 아나따삔디까(급고독장자)가 처음으로 부처님을 만난 곳이 바로 이 숲에서였습니다.
아라한을 이룸
숫도다나 왕은 출가하여 숲에 가지 않고도 죽기 전에 자신의 왕궁에서 아라한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웨살리의 꾸따-가-라살-라-에서 다섯 번째 우안거 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낫타빠까-시니-(버마 주석서)에서는 부처님이 숫도다나 왕이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500명의 스님을 이끌고 까삘라왓투로 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죽어가는 왕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아라한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마하-빠다-나 숫따(장부 14경)는 부처님께서 숫도다나 왕이 자신의 아버지이며 마하마야 왕비가 어머니이고 까삘라왓투가 수도였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죽고 난 후에 빠자빠띠 고따미, 야소다라 그리고 순다리 난다 또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구니가 되기 전에 난다와 라훌라는 이미 비구 스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모든 가족들이 불문에 입문했고 끝내는 생사의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