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03 19:08
테라와다 전승은 인간적인 부처님이라는 개념을 지키고 있는 반면, 대승(Mahāyāna)학파는 부처님의 신격화라는 개념을 발달시켰습니다. 전형적인 예가 부처님은 3개의 몸(kāyas), 즉 화신(Nirmāṇa-kāya, 우리가 볼 수 있는 늙고 변하는 몸), 보신(Sambhoga-kāya, 다른 세계에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는 부처님의 참 몸), 법신(Dharma-kāya, 부처님의 본질)를 갖고 있다는 삼신(Trikāya)이론입니다. 불교철학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부처님에 관련된 모든 종류의 연구를 뜻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개념의 전개입니다.
후대의 빨리어 주석서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부처님, 즉 성문보살(sāvaka-bodhisatta), 연각보살(pacceka-bodhisatta), 대보살(mahā-bodhisatta, 혹은 전지보살<sabbaññu-bodhisatta>)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등각자(Sammā-sambuddha)가 되기 위하여, 믿음(saddhā)이 있는 보살(bodhisatta)은 16 아승지(asaṅkheyya, 무수한 시간)를 더한 100,000 겁(kappa, 긴 시간) 동안 생사윤회를 받아야 하며, 힘(viriya)을 가진 보살은 8 아승지(asaṅkheyya)를 더한 100,000 겁(kappa) 동안 생사윤회를 받으며, 지혜(pañña)가 있는 보살은 4 아승지(asaṅkheyya)를 더한 100,000 겁(kappa) 동안 생사윤회를 받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발달된 이런 종류의 이론의 목적은 분명히 부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입니다. 밀린다왕문경(Milindapañha sutta)에 따르면 하나의 우주에 하나의 부처님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빨리어 불교에서 이런 종류의 보살 이론은 여성의 권리를 차별하기 위하여 이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태어날 수 없는 18가지 역겨운 상태 중 하나가 여자의 형상(itthibhāva),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자 노예의 자궁(dāsiyā kucchimhi)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제2차 불교 결집에 관한 것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티벳어 자료를 포함하여 북방의 전승 자료에 의하면, 대천(Mahā deva)스님이 제기한 다섯 가지 항목에 관하여 스님들 사이에서 다른 의견이 있었으므로 그 결집이 소집되어야만 했습니다. 테라와다 아라한에 대한 그의 다섯 가지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라한도 유혹당할 수 있다. (atthi arahato rāgo ti).
아라한도 세속에 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aññāṇaṁ nañāṇa).
아라한도 어떤 일에 관하여 의혹(kaṅkhā)이 생길 수 있다.
아라한은 다른 사람의 도움(paravitāraṇa)으로 아라한과의 자각을 얻는다.
성도의 길은 괴롭다는 놀라움의 외침으로 얻어진다. (aho).
그러므로 북방의 전승에 따르면, 아라한을 다르게 이해하는 이 다섯 항목으로 인해 두 종파의 분열이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반면 테라와다 전승은 비계율적 수행의 10개 항목을 분열의 이유로 삼고 있습니다. 빨리어 전승은 대천에 의해 제기된 도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방 전승에서 그 아라한에 대한 것이 상가 분열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 아라한 대신 보살의 개념을 발달시켰습니다.
대천(Mahā deva)의 논쟁은 티벳어와 북방의 자료에서뿐만 아니라, 빨리어 논사 주석서(Kathāvatthu aṭṭakathā)와 같은 빨리어 자료에서도 발견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가 안에서 이미 한 사람 혹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처님이 돌아가신 100년 후에 자신들의 이상이었던 아라한에 도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천(Mahā deva)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 사람들에 따르면 아라한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괴로움(dukkha)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3) 심화된 상가의 분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제2차 불교 결집 후에 상가는 분열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더욱 분열하게 되었고, BC 3세기에는 1개의 청정교단인 테라와다와 17개의 부파가 존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중에서 두 세 부파만이 불교 경전을 자체적으로 보존하여 전했지만 완전하게 삼장을 갖춘 것은 아니었고, 오직 청정교단인 테라와다에서만 완전한 삼장(Tripitaka)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중부(Mahāsaṅghika)는 두 개의 모음집(Sutta와 Vinaya)을 보존했습니다. 그러나 율장(Abhidhamma piṭaka)은 편찬하지 못했습니다.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는 부분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삼장을 보존했습니다. 반면 테라와다(Theravada)는 경(Sutta), 율(Vinaya) 그리고 논(Abhidhamma)을 완전하게 보존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우리는 공통의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문에서 경(Sutta)과 율(Vinaya)의 원전이 무슨 언어로 보존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또한 논(Abhidhamma)이 언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BC 3세기에 논사(Kathā vatthu)의 저작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경(Sutta)과 율(Vinaya)의 공통 자료에 의거하여 삼장(Tripitaka)의 형식을 합송하여 전하는 구두로 완성시키는데 200년이 걸렸다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상가가 분열하게 되었을 때, 각 부파는 수중에 공통 자료(Sutta와 Vinaya)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들 중 극히 소수만이 보존되었습니다. 대중부(Mahāsaṅghika)와 S설일체유부(arvāstivāda)는 웨다(Veda)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그것들을 보존했습니다. 최초의 산스크리트 본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벳어와 중국어 자료의 번역본은 아직 보존되고 있습니다. 테라와다(Theravada)는 이것을 부처님이 쓰셨던 인도의 방언으로 보존하였습니다. 그 언어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적 노력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사셨던 마가다(Magadha) 지방의 방언인 마가디(Magadhi)어 일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빨리어가 그것과 동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현재의 빨리어는 웃제니(Ujjeni)와 산치(Sañchi)같은 인도의 서쪽 지역의 방언들에 더욱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이나교(Jaina) 성전을 활자화 하는데 사용된 쁘라끄리뜨(Prakrit)라는 혼합된 방언일 수도 있습니다.
상가 분열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이해로부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무슨 근거로 우리는 테라와다 전승이 불교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테라와다가 불교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테라와다는 그들의 전승 안에 가장 오래된 교리들, 체계적이고 완전한 삼장(Tripiṭaka)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율장과 주석서를 참조하여 제2차 결집 기사의 구성을 정리해 보면,
① 부처님 입멸 백년 후 시수나가(Sisunāga) 왕조의 깔라소까(Kālāsoka) 왕 제위시에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왓지뿟따까) 비구들이 10가지 항목들에 대해 자유롭게 행하게 됩니다. 야사 장로(Yasa)가 웨살리에 갔다가 포살일에 그곳 비구들이 대중들 한 가운데 물을 가득 채운 발우를 놓아두고 재가자들에게 상가의 필수품을 구입하는 데 쓰기 위해 금·은을 그곳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② 계율에 철저한 서인도 출신의 야사 장로는 왓지족 출신 비구들이 재가자에게 금·은의 보시를 받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정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재가자들을 독려하며 금·은의 보시를 계속 받게 됩니다.
③ 야사 장로가 재가자에게 금·은을 보시하는 것을 비판하자,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그에게 하의갈마(paṭisāraṇiya kamma,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참회를 구하는 의식)을 요구했습니다. 야사 장로는 그들에게 계율상 하의갈마를 받은 비구는 수반(隨伴) 비구(anudhuta bhikkhu)를 동행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들어 자신에게 수반 비구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④ 야사 장로는 수반 비구와 함께 웨살리에 들어가 재가자에게 자신은 “비법을 비법이라고 말하고, 법을 법이라고 말한다. 비율을 비율이라고 말하고, 율을 율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며, 금은에 대한 비법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 생전시의 네 가지 화제를 예로 들면서 일찍이 부처님은 ”사문이나 붓다의 제자들이 금·은을 받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 것을 웨살리의 재가자에게 전합니다. 이에 재가자들은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보다는 야사 장로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⑤ 웨살리의 재가자는 야사 장로를 「석가모니의 출가 제자」라고 인정하고,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결과적으로 야사 장로는 하의갈마를 행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정당성을 재가자에게 주장한 것이 됩니다. 즉 이 행위는 그들이 속한 상가에서 보면,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상가의 결정에 불복한 것이 됩니다. 「탁마건도」에 의하면, 그러한 비구는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를 실시해 상가와 불공수(asambhoga, 다른 스님들과 같이 식사할 수도, 잠잘 수도 없는 것)하도록 하는 벌을 내릴 것을 율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⑥ 수반 비구에게 그러한 자초지종을 들은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이번에는 비구들을 소집하여 놓고 야사 장로에게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를 행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야사 장로는 신통으로 허공으로 올라 꼬삼비에 가서, 다른 지역에 있는 비구들에게 사자후를 토하듯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존자들이여! 이리로 모여 주십시오. 이 논쟁(adhikaraṇa)에 참가해 주십시오. 이미 비법이 빛나고 바른 법이 배제되었습니다. 비율이 빛나고 바른 율이 배제되었습니다. 이미 비법을 말하는 사람이 힘을 가지고, 바른 법을 말하는 사람이 약해졌습니다. 비율을 말하는 사람이 힘을 가지고, 바른 율을 말하는 사람이 약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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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 전승은 인간적인 부처님이라는 개념을 지키고 있는 반면, 대승(Mahāyāna)학파는 부처님의 신격화라는 개념을 발달시켰습니다. 전형적인 예가 부처님은 3개의 몸(kāyas), 즉 화신(Nirmāṇa-kāya, 우리가 볼 수 있는 늙고 변하는 몸), 보신(Sambhoga-kāya, 다른 세계에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는 부처님의 참 몸), 법신(Dharma-kāya, 부처님의 본질)를 갖고 있다는 삼신(Trikāya)이론입니다. 불교철학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부처님에 관련된 모든 종류의 연구를 뜻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개념의 전개입니다.
후대의 빨리어 주석서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부처님, 즉 성문보살(sāvaka-bodhisatta), 연각보살(pacceka-bodhisatta), 대보살(mahā-bodhisatta, 혹은 전지보살<sabbaññu-bodhisatta>)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등각자(Sammā-sambuddha)가 되기 위하여, 믿음(saddhā)이 있는 보살(bodhisatta)은 16 아승지(asaṅkheyya, 무수한 시간)를 더한 100,000 겁(kappa, 긴 시간) 동안 생사윤회를 받아야 하며, 힘(viriya)을 가진 보살은 8 아승지(asaṅkheyya)를 더한 100,000 겁(kappa) 동안 생사윤회를 받으며, 지혜(pañña)가 있는 보살은 4 아승지(asaṅkheyya)를 더한 100,000 겁(kappa) 동안 생사윤회를 받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발달된 이런 종류의 이론의 목적은 분명히 부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입니다. 밀린다왕문경(Milindapañha sutta)에 따르면 하나의 우주에 하나의 부처님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빨리어 불교에서 이런 종류의 보살 이론은 여성의 권리를 차별하기 위하여 이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태어날 수 없는 18가지 역겨운 상태 중 하나가 여자의 형상(itthibhāva),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자 노예의 자궁(dāsiyā kucchimhi)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제2차 불교 결집에 관한 것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티벳어 자료를 포함하여 북방의 전승 자료에 의하면, 대천(Mahā deva)스님이 제기한 다섯 가지 항목에 관하여 스님들 사이에서 다른 의견이 있었으므로 그 결집이 소집되어야만 했습니다. 테라와다 아라한에 대한 그의 다섯 가지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라한도 유혹당할 수 있다. (atthi arahato rāgo ti).
아라한도 세속에 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aññāṇaṁ nañāṇa).
아라한도 어떤 일에 관하여 의혹(kaṅkhā)이 생길 수 있다.
아라한은 다른 사람의 도움(paravitāraṇa)으로 아라한과의 자각을 얻는다.
성도의 길은 괴롭다는 놀라움의 외침으로 얻어진다. (aho).
그러므로 북방의 전승에 따르면, 아라한을 다르게 이해하는 이 다섯 항목으로 인해 두 종파의 분열이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반면 테라와다 전승은 비계율적 수행의 10개 항목을 분열의 이유로 삼고 있습니다. 빨리어 전승은 대천에 의해 제기된 도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방 전승에서 그 아라한에 대한 것이 상가 분열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 아라한 대신 보살의 개념을 발달시켰습니다.
대천(Mahā deva)의 논쟁은 티벳어와 북방의 자료에서뿐만 아니라, 빨리어 논사 주석서(Kathāvatthu aṭṭakathā)와 같은 빨리어 자료에서도 발견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가 안에서 이미 한 사람 혹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처님이 돌아가신 100년 후에 자신들의 이상이었던 아라한에 도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천(Mahā deva)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 사람들에 따르면 아라한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괴로움(dukkha)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3) 심화된 상가의 분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제2차 불교 결집 후에 상가는 분열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더욱 분열하게 되었고, BC 3세기에는 1개의 청정교단인 테라와다와 17개의 부파가 존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중에서 두 세 부파만이 불교 경전을 자체적으로 보존하여 전했지만 완전하게 삼장을 갖춘 것은 아니었고, 오직 청정교단인 테라와다에서만 완전한 삼장(Tripitaka)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중부(Mahāsaṅghika)는 두 개의 모음집(Sutta와 Vinaya)을 보존했습니다. 그러나 율장(Abhidhamma piṭaka)은 편찬하지 못했습니다.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는 부분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삼장을 보존했습니다. 반면 테라와다(Theravada)는 경(Sutta), 율(Vinaya) 그리고 논(Abhidhamma)을 완전하게 보존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우리는 공통의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문에서 경(Sutta)과 율(Vinaya)의 원전이 무슨 언어로 보존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또한 논(Abhidhamma)이 언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BC 3세기에 논사(Kathā vatthu)의 저작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경(Sutta)과 율(Vinaya)의 공통 자료에 의거하여 삼장(Tripitaka)의 형식을 합송하여 전하는 구두로 완성시키는데 200년이 걸렸다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상가가 분열하게 되었을 때, 각 부파는 수중에 공통 자료(Sutta와 Vinaya)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들 중 극히 소수만이 보존되었습니다. 대중부(Mahāsaṅghika)와 S설일체유부(arvāstivāda)는 웨다(Veda)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그것들을 보존했습니다. 최초의 산스크리트 본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벳어와 중국어 자료의 번역본은 아직 보존되고 있습니다. 테라와다(Theravada)는 이것을 부처님이 쓰셨던 인도의 방언으로 보존하였습니다. 그 언어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적 노력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사셨던 마가다(Magadha) 지방의 방언인 마가디(Magadhi)어 일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빨리어가 그것과 동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현재의 빨리어는 웃제니(Ujjeni)와 산치(Sañchi)같은 인도의 서쪽 지역의 방언들에 더욱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이나교(Jaina) 성전을 활자화 하는데 사용된 쁘라끄리뜨(Prakrit)라는 혼합된 방언일 수도 있습니다.
상가 분열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이해로부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무슨 근거로 우리는 테라와다 전승이 불교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테라와다가 불교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테라와다는 그들의 전승 안에 가장 오래된 교리들, 체계적이고 완전한 삼장(Tripiṭaka)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율장과 주석서를 참조하여 제2차 결집 기사의 구성을 정리해 보면,
① 부처님 입멸 백년 후 시수나가(Sisunāga) 왕조의 깔라소까(Kālāsoka) 왕 제위시에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왓지뿟따까) 비구들이 10가지 항목들에 대해 자유롭게 행하게 됩니다. 야사 장로(Yasa)가 웨살리에 갔다가 포살일에 그곳 비구들이 대중들 한 가운데 물을 가득 채운 발우를 놓아두고 재가자들에게 상가의 필수품을 구입하는 데 쓰기 위해 금·은을 그곳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② 계율에 철저한 서인도 출신의 야사 장로는 왓지족 출신 비구들이 재가자에게 금·은의 보시를 받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정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재가자들을 독려하며 금·은의 보시를 계속 받게 됩니다.
③ 야사 장로가 재가자에게 금·은을 보시하는 것을 비판하자,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그에게 하의갈마(paṭisāraṇiya kamma,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참회를 구하는 의식)을 요구했습니다. 야사 장로는 그들에게 계율상 하의갈마를 받은 비구는 수반(隨伴) 비구(anudhuta bhikkhu)를 동행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들어 자신에게 수반 비구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④ 야사 장로는 수반 비구와 함께 웨살리에 들어가 재가자에게 자신은 “비법을 비법이라고 말하고, 법을 법이라고 말한다. 비율을 비율이라고 말하고, 율을 율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며, 금은에 대한 비법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 생전시의 네 가지 화제를 예로 들면서 일찍이 부처님은 ”사문이나 붓다의 제자들이 금·은을 받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 것을 웨살리의 재가자에게 전합니다. 이에 재가자들은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보다는 야사 장로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⑤ 웨살리의 재가자는 야사 장로를 「석가모니의 출가 제자」라고 인정하고,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결과적으로 야사 장로는 하의갈마를 행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정당성을 재가자에게 주장한 것이 됩니다. 즉 이 행위는 그들이 속한 상가에서 보면,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상가의 결정에 불복한 것이 됩니다. 「탁마건도」에 의하면, 그러한 비구는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를 실시해 상가와 불공수(asambhoga, 다른 스님들과 같이 식사할 수도, 잠잘 수도 없는 것)하도록 하는 벌을 내릴 것을 율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⑥ 수반 비구에게 그러한 자초지종을 들은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은 이번에는 비구들을 소집하여 놓고 야사 장로에게 거죄갈마(ukkhepaniya-kamma)를 행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야사 장로는 신통으로 허공으로 올라 꼬삼비에 가서, 다른 지역에 있는 비구들에게 사자후를 토하듯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존자들이여! 이리로 모여 주십시오. 이 논쟁(adhikaraṇa)에 참가해 주십시오. 이미 비법이 빛나고 바른 법이 배제되었습니다. 비율이 빛나고 바른 율이 배제되었습니다. 이미 비법을 말하는 사람이 힘을 가지고, 바른 법을 말하는 사람이 약해졌습니다. 비율을 말하는 사람이 힘을 가지고, 바른 율을 말하는 사람이 약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