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여기서 그 맨 처음에 테라와다 창립할 적에 어떻게 알아서 전화가 왔는데, 이쪽 귀에다 바른손 오른손으로 무슨 일이 있어서 여기다 대니까 전화 소리가 안 들려요. 이거 뭐이 잘못된 감이다. 골칫거리다 하고 그다음에 이쪽에다 대니깐 잘 들려서 받고 있다가, 저 영주 가가지구 서리 올라오는데 기사님이 왼쪽에서 말하는데 말소리가 잘 안 들려서 아버지의 전화 소리가 내가 귀가 잘못된 걸 전화기가 잘못된 줄 알았겠구나 했는데, 오늘은 기찻간에서 대전에서 좀 자고요 와서 깨어났는데 일어나니까 뭐 그때 스님이 자꾸 말을 하는데 이거 말이 더 들리질 않아. 이상하다 하고. 지금 인제 보니까 여기 오니까 뭐 아주 안 들려.
그래서 병원에를 좀 가보자 하고 갔더니, 이게 꽉 부어가지고서 서리 저거 한다고 신경이 아마 많이 쓰여댔던가 봐요. 병원에 가서 뭐 조금 손 보고 저거 하니까 이젠 그전과 같이 들립니다.
사람이 이목구비에 어느 한 군데가 잘못되면 귀가 안 들리면 어름하고 눈이 안 보이면 더듬더듬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아까 어름하게 저거 될까 봐 가서 병원에 가서 그걸 나서가지고 왔는데, 이 좁은데 좀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뭐 병이 났던 건 할 수 없고.
작년에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 테라와다 불교라고 이렇게 저걸 해놓고, 가장 그 공덕되는 일이 여기에서 법문한 것이 가장 공덕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하죠.
여러분들이 이것을 들어준 게 그야말로 참말로 공덕이거든요. 우리는 우리 한국의 스님들은 걸식하는 걸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러면 아! 그 스님이 신도를 복을 지어주기 위해서 걸식을 한다고 그러는데, 아니 무슨 그렇게 복이 많다고 저거 하느냐고, 또 한마디로 우리가 뭐 거지냐고 얻어먹고 이러는데.
부처님 법에는 식사를 이 신도님이 갖다 올리는 게 큰 공덕이요, 스님이 받아주는 게 또 큰 공덕이라고.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법문을 아무리 여기서 잘한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잘 들어주지 않으면 가치가 없듯이, 쌍방이 이렇게 잘 맞아 가지고 지나간 해에는 잘 결국은 마친 걸로 압니다. 근데 근래에 와가지고는 뭐 어느 절이나 무슨 대학 무슨 대학 해가지고 많이들 저거 하는데, 제가 보기는 우리 모임이 제일로 좋은 걸로 이렇게 알고 있지요.
왜 그러느냐 이러면, 스님네가 마음이 청정한 분들이 와서 법문을 하니까 그렇고, 여러분들이 또 그거 배우는 자세가 다른 뜻이 없이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그래 이것을 작년보다는 13년도에는 좀 더 잘해서, 그러나 지금까지 한 거만 하더래도 우리 테라와다에서는 여기서 공부한 거 내놓고래도 테라와다 라는 말만 우리나라에 퍼진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좋은 일이 생겼는지를 우린 모릅니다.
이걸 모를 적에는 불교를 참말로 그것도 제 생각대로 우리나라에서 이 유류를 지킨다는 사람이 뭐라고 부르느냐 이러면, 계율을 지킨다는 사람이 나이 70 넘으면 계를 바치고 시래 아무렇게 해도 된다고, 이게 어디 경전에 있는 놈의 말인가요?
없는 말 가지고 무슨 계율을, 무슨 고기를 먹는 것이 뭐 어떻다고 그걸 설명을 한다고.
부처님 법을 모르고 하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앞으로는 속는 일이 없도록 봐야 되고, 작년에 첫해에도 그렇게 잘했는데 금년에 한 번 지냈으니까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겠소. 그러나 우리가 이 아직 좀 모임에서 미진한 게 뭐이냐 이러면, 정진을 하는 데가 겨우 법문을 듣는 걸로 하고 조금 있지 그렇게 있지, 큰 일을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이제 지도하는 스님네나 여러분들 따르는 분들이나 이게 좀 아쉬운 점이올시다.
언젠가 한번 저기요 강남에 있는 불광사의 신도들이 태국 어느 절에를 가가지고 보니, 내가 생각인데 거기 갈 적에는 우리가 그래도 한국에선 서울이라는 데고 불광사나 이렇게 하면 신도도 서울에서 제일로 많고 불사도 되게 크게 하고 이런 데니까 어디 가가지구 그래도 좀 비교라도 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가봤더니, 영 엄청나게 저쪽하고 차이가 있어 비교할 수가 없거든. 그래 물어본다는 게 질문이 있습니다 하고 신도 회장님이 그러더라고.
“이렇게 크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고 이런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 부주지 스님이 하는 말이 씨익 이렇게 웃고 있더니, “자꾸 공덕이 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일이 이렇게 돼요.”
그 우리나라에서도 공덕되는 일을 한다고 하는 게 요새는 저 늙은이 정신 나간 사람들 모은 사람이 공덕되는 일을 하는 건 줄 알고, 무엇하는 사람이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이 공덕되는 일을 하는 겁니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아까 우리 이사장 스님이 세 마디 그 짧은 거 한 거 있지요? 그거 하는 게 공덕되는 진짜 공덕되는 일이지. 다른 일은 거기에다가 비하면 아주 엄청나게 차이 나는 저거거든요.
우리 오늘의 이 마음으로 짓는 공덕, 말로 짓는 이 공덕, 참 뜻으로 몸으로 이렇게 짓는 이게 얼마나 한량 없는 공덕인가. 이게 뭐 대단히 어려운 걸로들 알고 있거든.
다 어떻게 그 어려운 걸 하느냐고.
이 세상에 제일로 쉬운 게 공덕되는 일이 제일로 쉬운 것이고, 하기 제일로 쉬운 게 그거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이제 한문의 문자 가지고 시래 뭐라고 그랬는지 글을 새기지도 못할 놈의 걸 그걸 새긴다고 해가지고 어느 때는 빨리어를 음역을 해놓은 걸 그거를 해석한다고 애를 쓰지 않는가, 뭐 여러 가지로 저거 하면 불교를 모르겠다고 하는 게라.
그 세 마디가 부처님 말씀을 수행하는 전체 법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건 가장 수월한 건데 그걸 못 한다구. 왜 못하느냐? 무얼 하고 싶은 생각하구 딴 저것이 많이 있어가지고 이 몸을 편안하게 하고 고요하게 저거 해서, 내가 결국은 그것이 그저 내 생각지 않아도 그저 술술 나오도록 만들어 놨으면 공덕되는 일만 할 건데, 이것은 무엇을 할까 하고 긴장해가지고 서리 쟁쟁있어 놓으니 그 법은 하나도 모르고, 뭐를 따라갈라고 그러느냐 이러면 지금 한국 불교에서 가장 좋은 일한다는 거 그것만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게 언제 가면 좀 더 편안하게 되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해도, 우리 그 한국에서는 요새 일반에서들 많이 말하는 게 지금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누가 다음 기회에 할 건가? 좀 보이기만 하면 그 소리예요. 출가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이러면 ‘내가 이번에 출가하면 어느 큰 스님한테 상좌가 돼 가지고 어느 큰절에 데려가 가지고 저 스님들과 같이 저렇게 좀 으시대고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이게 결국은 그 사람의 희망이니, 요 아주 쉬운 좋은 뜻 가지는 거 좋은 말 가지는 거 좋은 몸을 가지고 서리 저거 하는 거를 그것이 그게 들어와야 그걸 하지요.
여러분은 오늘 이거 한마디만 듣고 간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것이든지 이걸 빼놓고는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이걸 빼놓고는 할 수가 없고,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생각을 가지고서래 우리가 그야말로 ‘내가 오늘 이 지은 공덕이 부처님의 말씀을 잘 들은 공덕이 얼마나 크느냐’ 하는 거를 알 수 있도록 저거 해서, 항상 건강하고 바른 생각으로 부처님 말씀을 잘 듣고 저거 하면 금년의 노력만 할 것 같으면 후년에는 아마 우리도 이제 다른 때보다는 좀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할 터이니 그때까지 좀 여러분들도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요.
해도 아까 처음에 왔을 적에는 영 들리지 않으면 오늘 또 공짜로 내려가지 않겠는가 했더니, 그 전문가한테 가니까 뭐 귀에다가 뭘 조금조금 하고 나니깐 왕왕하는 소리가 없어지고 들리기도 하고 뭐 또 말하는데 들리지 않아도 하지 않느냐 이러지만 그래도 그게 제대로 된 게 좋아서, 다 여러분들이 좋게 생각을 하셔서 빨리 나은 것 같습니다.
* 2013년 (사)한국 테라와다불교 담마스쿨 개강법회_뿐냐산또 도성 큰스님 법문(130308_02)
(30:27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예전에 여기서 그 맨 처음에 테라와다 창립할 적에 어떻게 알아서 전화가 왔는데, 이쪽 귀에다 바른손 오른손으로 무슨 일이 있어서 여기다 대니까 전화 소리가 안 들려요. 이거 뭐이 잘못된 감이다. 골칫거리다 하고 그다음에 이쪽에다 대니깐 잘 들려서 받고 있다가, 저 영주 가가지구 서리 올라오는데 기사님이 왼쪽에서 말하는데 말소리가 잘 안 들려서 아버지의 전화 소리가 내가 귀가 잘못된 걸 전화기가 잘못된 줄 알았겠구나 했는데, 오늘은 기찻간에서 대전에서 좀 자고요 와서 깨어났는데 일어나니까 뭐 그때 스님이 자꾸 말을 하는데 이거 말이 더 들리질 않아. 이상하다 하고. 지금 인제 보니까 여기 오니까 뭐 아주 안 들려.
그래서 병원에를 좀 가보자 하고 갔더니, 이게 꽉 부어가지고서 서리 저거 한다고 신경이 아마 많이 쓰여댔던가 봐요. 병원에 가서 뭐 조금 손 보고 저거 하니까 이젠 그전과 같이 들립니다.
사람이 이목구비에 어느 한 군데가 잘못되면 귀가 안 들리면 어름하고 눈이 안 보이면 더듬더듬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아까 어름하게 저거 될까 봐 가서 병원에 가서 그걸 나서가지고 왔는데, 이 좁은데 좀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뭐 병이 났던 건 할 수 없고.
작년에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 테라와다 불교라고 이렇게 저걸 해놓고, 가장 그 공덕되는 일이 여기에서 법문한 것이 가장 공덕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하죠.
여러분들이 이것을 들어준 게 그야말로 참말로 공덕이거든요. 우리는 우리 한국의 스님들은 걸식하는 걸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러면 아! 그 스님이 신도를 복을 지어주기 위해서 걸식을 한다고 그러는데, 아니 무슨 그렇게 복이 많다고 저거 하느냐고, 또 한마디로 우리가 뭐 거지냐고 얻어먹고 이러는데.
부처님 법에는 식사를 이 신도님이 갖다 올리는 게 큰 공덕이요, 스님이 받아주는 게 또 큰 공덕이라고.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법문을 아무리 여기서 잘한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잘 들어주지 않으면 가치가 없듯이, 쌍방이 이렇게 잘 맞아 가지고 지나간 해에는 잘 결국은 마친 걸로 압니다. 근데 근래에 와가지고는 뭐 어느 절이나 무슨 대학 무슨 대학 해가지고 많이들 저거 하는데, 제가 보기는 우리 모임이 제일로 좋은 걸로 이렇게 알고 있지요.
왜 그러느냐 이러면, 스님네가 마음이 청정한 분들이 와서 법문을 하니까 그렇고, 여러분들이 또 그거 배우는 자세가 다른 뜻이 없이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그래 이것을 작년보다는 13년도에는 좀 더 잘해서, 그러나 지금까지 한 거만 하더래도 우리 테라와다에서는 여기서 공부한 거 내놓고래도 테라와다 라는 말만 우리나라에 퍼진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좋은 일이 생겼는지를 우린 모릅니다.
이걸 모를 적에는 불교를 참말로 그것도 제 생각대로 우리나라에서 이 유류를 지킨다는 사람이 뭐라고 부르느냐 이러면, 계율을 지킨다는 사람이 나이 70 넘으면 계를 바치고 시래 아무렇게 해도 된다고, 이게 어디 경전에 있는 놈의 말인가요?
없는 말 가지고 무슨 계율을, 무슨 고기를 먹는 것이 뭐 어떻다고 그걸 설명을 한다고.
부처님 법을 모르고 하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앞으로는 속는 일이 없도록 봐야 되고, 작년에 첫해에도 그렇게 잘했는데 금년에 한 번 지냈으니까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겠소. 그러나 우리가 이 아직 좀 모임에서 미진한 게 뭐이냐 이러면, 정진을 하는 데가 겨우 법문을 듣는 걸로 하고 조금 있지 그렇게 있지, 큰 일을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이제 지도하는 스님네나 여러분들 따르는 분들이나 이게 좀 아쉬운 점이올시다.
언젠가 한번 저기요 강남에 있는 불광사의 신도들이 태국 어느 절에를 가가지고 보니, 내가 생각인데 거기 갈 적에는 우리가 그래도 한국에선 서울이라는 데고 불광사나 이렇게 하면 신도도 서울에서 제일로 많고 불사도 되게 크게 하고 이런 데니까 어디 가가지구 그래도 좀 비교라도 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가봤더니, 영 엄청나게 저쪽하고 차이가 있어 비교할 수가 없거든. 그래 물어본다는 게 질문이 있습니다 하고 신도 회장님이 그러더라고.
“이렇게 크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고 이런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 부주지 스님이 하는 말이 씨익 이렇게 웃고 있더니, “자꾸 공덕이 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일이 이렇게 돼요.”
그 우리나라에서도 공덕되는 일을 한다고 하는 게 요새는 저 늙은이 정신 나간 사람들 모은 사람이 공덕되는 일을 하는 건 줄 알고, 무엇하는 사람이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이 공덕되는 일을 하는 겁니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아까 우리 이사장 스님이 세 마디 그 짧은 거 한 거 있지요? 그거 하는 게 공덕되는 진짜 공덕되는 일이지. 다른 일은 거기에다가 비하면 아주 엄청나게 차이 나는 저거거든요.
우리 오늘의 이 마음으로 짓는 공덕, 말로 짓는 이 공덕, 참 뜻으로 몸으로 이렇게 짓는 이게 얼마나 한량 없는 공덕인가. 이게 뭐 대단히 어려운 걸로들 알고 있거든.
다 어떻게 그 어려운 걸 하느냐고.
이 세상에 제일로 쉬운 게 공덕되는 일이 제일로 쉬운 것이고, 하기 제일로 쉬운 게 그거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이제 한문의 문자 가지고 시래 뭐라고 그랬는지 글을 새기지도 못할 놈의 걸 그걸 새긴다고 해가지고 어느 때는 빨리어를 음역을 해놓은 걸 그거를 해석한다고 애를 쓰지 않는가, 뭐 여러 가지로 저거 하면 불교를 모르겠다고 하는 게라.
그 세 마디가 부처님 말씀을 수행하는 전체 법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건 가장 수월한 건데 그걸 못 한다구. 왜 못하느냐? 무얼 하고 싶은 생각하구 딴 저것이 많이 있어가지고 이 몸을 편안하게 하고 고요하게 저거 해서, 내가 결국은 그것이 그저 내 생각지 않아도 그저 술술 나오도록 만들어 놨으면 공덕되는 일만 할 건데, 이것은 무엇을 할까 하고 긴장해가지고 서리 쟁쟁있어 놓으니 그 법은 하나도 모르고, 뭐를 따라갈라고 그러느냐 이러면 지금 한국 불교에서 가장 좋은 일한다는 거 그것만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게 언제 가면 좀 더 편안하게 되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해도, 우리 그 한국에서는 요새 일반에서들 많이 말하는 게 지금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누가 다음 기회에 할 건가? 좀 보이기만 하면 그 소리예요. 출가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이러면 ‘내가 이번에 출가하면 어느 큰 스님한테 상좌가 돼 가지고 어느 큰절에 데려가 가지고 저 스님들과 같이 저렇게 좀 으시대고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이게 결국은 그 사람의 희망이니, 요 아주 쉬운 좋은 뜻 가지는 거 좋은 말 가지는 거 좋은 몸을 가지고 서리 저거 하는 거를 그것이 그게 들어와야 그걸 하지요.
여러분은 오늘 이거 한마디만 듣고 간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것이든지 이걸 빼놓고는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이걸 빼놓고는 할 수가 없고,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생각을 가지고서래 우리가 그야말로 ‘내가 오늘 이 지은 공덕이 부처님의 말씀을 잘 들은 공덕이 얼마나 크느냐’ 하는 거를 알 수 있도록 저거 해서, 항상 건강하고 바른 생각으로 부처님 말씀을 잘 듣고 저거 하면 금년의 노력만 할 것 같으면 후년에는 아마 우리도 이제 다른 때보다는 좀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할 터이니 그때까지 좀 여러분들도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요.
해도 아까 처음에 왔을 적에는 영 들리지 않으면 오늘 또 공짜로 내려가지 않겠는가 했더니, 그 전문가한테 가니까 뭐 귀에다가 뭘 조금조금 하고 나니깐 왕왕하는 소리가 없어지고 들리기도 하고 뭐 또 말하는데 들리지 않아도 하지 않느냐 이러지만 그래도 그게 제대로 된 게 좋아서, 다 여러분들이 좋게 생각을 하셔서 빨리 나은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출처 원문: 붓다의길따라 선원 카페
https://cafe.naver.com/buddhayana1/2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