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6-07 22:10
[교리] 닙바나, 열반
 글쓴이 : 최고관리자 (121.♡.217.163)
조회 : 425  
1. 닙바나

 

*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월폴라 라훌라 / 전재성 역저 요약

 

  - 빠리닛부따 : 모든 형성의 그침->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종식->빛바래어 사라짐->부수어 없어짐->열반인 닙바나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책이 저술되었으나, 그러한 책들은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음. 언어의 형태로 닙바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붓다가 죽어 완전한 열반에 든다.'라는 표현은 열반을 어떤 존재나 영역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일으킨 것임. (찬불가 보현행원 중 영겁토록 열반에 들지말라는 말 역시...). 아라한의 빠리닙바나 후의 상태를 땔감이 없어 꺼져버린 불이나 램프의 비유로 유추하여 역시 죽음 후의 어떤 상태라는 개념을 일으키는 것 또한 잘못된 견해를 일으킨 것으로 램프의 비유는 열반의 상태를 비유한 것이 아니라 오온인 이 몸과 마음의 비유임.        SN. IV 369~373, 열반에 관한 비유적 표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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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반은 죽은 다음에 성취하는 것이 아닌, 이 생에서 경험하는 진리임.(닙바나와 빠리닙바나 차이) 또한 열반 다음에 어떤 무엇이 있는 존재의 개념을 붙여서는 안되는 진리 자체임.

  - 열반은 이원성, 상대성, 시간성, 존재성, 선악 등 모든 '개념'적용될 수 없음. 최상의 기쁨,행복이란 표현에서 기쁨, 행복은 우리가 아는 개념으로서의 기쁨, 행복은 아님. 빳짯땅 웨딧땁보 윈뉴-히 : 지혜로운자에 의해 스스로(각자) 깨달아지는 것이 담마, 진리의 성품. 닙바나는 언어와 사유의 대상이 아님.

  - 열반이 탐욕을 끊은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 결과라는 것은 어떤 원인에 조건지어진 것이라는 것임. 열반은 원인이나 결과가 아니기에 선정이나 가 있다는 것은 원인이 있다는 것,

  - 대승불교의 선구자 나가르주나 존자(용수 보살)는 윤회는 열반과 다르지 않고, 열반은 윤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함.

 

 

* 중론 보충 필요

 

* 청정도론 주석 보충 필요

 

 

 * 쿳다까 니까야 중 '우다나'에 언급된 닙바나 개념

 

 8.1 Parinibbana (1)

There is, bhikkuhs, that base where there is no earth, no water, no fire, no air; no base consisting of the infinity of space, no base consisting of the infinity of consciousness, no base consisting of nothingness, no base consisting of neither-perception-nor-non-perception; neither this world nor another world nor both; neither sun nor moon. Here, bhikkhus, I say there is no coming, no going, no staying, no deceasing, no uprising. Not fixed, not movable, it has no support. Just this is the end of suffering.

 비구들이여! 땅의 요소도, 4대 요소(물의 요소도, 불의 요소도, 바람의 요소도)가 없는 곳이 있다. 무한한 허공으로 이루어진 곳[空無邊處]도 아니고, 무한한 인식으로 이루어진 곳[識無邊處]도 아니며, ‘무’로 이루어진 곳[無所有處]도 아니고, ‘지각[想]이 아니고 지각이 아닌 것도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곳[非想非非想處]도 아니다. 이 세상도 아니고 다른 세상도 아니며 둘 다도 아니다.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다. 고정된 것도 아니며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의지하는 것도 없다. 바로 이곳이 고통의 끝이라고 나는 말한다.

 

8.2 Parinibbana (2)

The uninclined is hard to see,

The truth is not easy to see;

Craving is penetrated by one who knows,

For one who sees there is nothing.

 집착이 없는 상태를 보기 어렵고

진리를 보기 쉽지 않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갈애를 꿰뚫기에,

진리를 보는 사람은 집착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8.3 Parinibbana (3)

There is, bhikkhus, a not-born, a-not-brought-to-being, a not-made, a not-conditioned. If, bhikkhus, there were no not-born, not-brought-to-being, not-made, not-conditioned, no escape would be discerned from what is born, brought-to-being, made, conditioned. But since there is a not-born, a not-brought-to-being, a not-made, a not-conditioned, therefore an escape is discerned from what is born, brought-to-being, made, conditioned.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는 것, 생성되지 않은 것, 만들어지지 않는 것, 조건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약 태어나지 않는 것, 생성되지 않는 것, 만들어지지 않는 것, 조건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것이 없다면, 태어난 것, 생성된 것, 만들어진 것,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을 구별하여 벗어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지 않는 것, 생성되지 않는 것, 만들어지지 않는 것, 조건 지어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태어난 것, 이루어진 것, 만들어진 것, 조건 지어진 것을 구별하여 벗어남이 있다.

 

8.4 Parinibbana (4)

For the supported there is instability, for the unsupported there is no instability; when there is no instability there is serenity; when there is serenity there is no inclination: when there is no inclination there is no coming-and-going; when there is no coming-and-going there is no decease-and-uprising; when there is no decease-and-uprising there is neither “here" nor "beyond" nor “in between the two." Just this is the end of suffering.

 

밖에서 의지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불안정함이 있고, 밖에서 의지처를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안정함이 없다. 불안정함이 없으면 평온이 있고, 평온이 있으면 집착이 없으며, 집착이 없으면 오고 가는 일이 없고, 오고 가는 일이 없으면 사라짐과 일어남이 없고, 사라짐과 일어남이 없으면,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그 두 세상 사이”도 없다. 바로 이것이 고통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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