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작성일 : 17-01-01 15:35
[2017년 신년법문] 법의 공덕..무상(Anicca)의 기쁨
 글쓴이 : usasana (218.♡.214.124)
조회 : 1,489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법의 공덕을 지속적으로 지어가지 못하고 자꾸 잊어버리거나 하다말고 하다가 말고 그러다 아예 놓아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마음이라는 성질이 일어나면 항상 사라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일어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에 사띠를 두고.. 보는 마음에 사띠라는 일을 시켜서.. 자꾸 보고 또 보고.. 다시 또 보고 보고.. 계속적으로 보다가 보면 새록새록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볼 때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항상 하지 않다는 것, 바뀐다는 것, 새록새록 일어난다는 것, 일어나서 사라진다는 것, 서로 다르다는 것 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무상합니까?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엊그제 봄꽃이 화려하게 피었던 듯싶은데 벌써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는 걸 보고 인생이 덧없이 허무하고 슬퍼서 무상한 것입니까?
 

삶이라는 것이 참 부질없이 허무하고 슬프고 무상한 그런 것입니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꿈과 같고 환()과도 같은 것입니까? 그렇다면 공덕은 어떻게 짓고 쌓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바라밀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 바라밀의 끝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사띠의 노를 저어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바라밀의 공덕행입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삶을 가장 가치 있게 승화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무상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무상(아닛짜)의 기쁨, 희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서 담마가 일하는 것으로.. 꿈이나 환()에서 바라밀 공덕으로.. 인생의 삶에서 법의 가치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사띠 한번에..
느낌 하나에..
대상 하나에.. 
 

안다는 것, 아는 것 한 번에 그렇게 새록새록 법의 공덕으로 나툴 수 있는 것이 사띠와 지혜가 하는 일입니다. 아닛짜는 통찰지로서 깨닫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빠라맛타를 대상으로 하는 앎의 지혜가 그 특성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법의 성질입니다.  
 

법이 일함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서 법이 수행하도록 매 순간순간마다 날마다 좋은() 날로 바꿔놓는 것이 아닛짜입니다
 

더 이상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지 않으며 집착과 분별을 다 여의고 비워낼 수 있는 크나큰 힘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지혜로서 아닛짜/둑카/아낫따를 꿰뚫어 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생각하는 것만으로서 무상//무아를 꿰뚫어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아닛짜를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아닛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매우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며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아닛짜의 덧없음, 허무함, 꿈과 같고 환과 같은 것만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그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고 하여 변하는 것만으로 아닛짜를 말하지 마십시오
 

붓다의 가르침이 그렇게 부질없고 환()이나 꿈처럼 변해버려서 허무하고 괴로운 담마가 아닙니다. 슬프고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지는 부정적인 담마가 결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모하(moha/무명)의 허물을 아셨기에 이 법을 발견하고 하셨습니다
 

새록새록 매 순간순간 날마다 새 것으로 화현되는 새로운 세계의 가치이자 그 실천입니다


이미 여러 해 동안 길들여지고 훈습되어진 악습의 나쁜 마음에서 질 좋은 마음으로 진화해가는 변환과정이요, 개선해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마음작용입니다
 

잘 못 보는 것을 바로 잡아서 바르게 보이도록 표식(싸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보는 쪽을 바르게 하여 바른 대상을 얻도록 하는 의식의 계발인 것입니다
 

보는 견해와 생각이 바르도록 을 활짝 열어주고 길을 터주는 여래의 발자국에서 보여지는 축포와도 같은 시그널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런 특성이 발현됩니다. 보는 것이 완전해야 보이는 것이 더욱 바르기 때문입니다
 

번뇌의 과보, 업의 과보, 과보의 과보가 무너지는 현장입니다
 

변하는 것을 보거나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진정 아닛짜를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닛짜는 지혜가 깨닫고 이해하는 법의 성질입니다. 지혜의 대상이 빠라맛타 담마이기 때문입니다
 

정녕 말하건데 아닛짜/둑카/아낫따는 빠라맛타의 성품입니다. 사성제의 진리를 이해하고 깨달아가는 중도의 길 위에 나있는 현법입니다
 

아닛짜를 바르게 이해할 것 같으면 결코 슬프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아닛짜를 보고 슬프고 괴롭다면 여전히 집착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_(2017년 정월 초하루 청명하고 포근한 새해 아침을 맞이하며.. 사사나스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