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존상을 가정에 모시는 법 /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1-12-25
조회수 4166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시자 불자들은 불탑이나 부처님의 해탈보리수, 부처님의 족적에 예배ㆍ공양 올림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그 위대한 가르침을 기억하고자 하였습니다. 

부처님 입멸 후 500년경 부터는 그리움이나 기억의 차원을 넘어 예배대상에 대해 좀더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들이 생겨나면서 마침내 부처님의 존상(불상,불화)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됩니다. 불상은 대부분 사원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불상 봉안은 출가자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출ㆍ재가를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불상을 봉안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가정에 불상 모시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 속설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즉 "불상은 절에서 스님들이 모시는 것이지 가정에서 모시는 것은 불경한 일이다." 혹은 "불상을 집안에 모셔두면 좋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스리랑카ㆍ미얀마 ㆍ태국ㆍ일본 등 대부분의 불교국가 불자가정은 불상을 모시고 있거나 불단을 꾸며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단에 음식이나 꽃 등 각종 공양물을 올리거나 불단 앞에서 명상ㆍ독경ㆍ예불의식을 행하기도 하고, 스님을 초청해 공양을 올리면서 법문을 청해 듣거나 가족법회를 열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불상 대신 부처님의 존상이 그려진 액자를 벽에 모셔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액자 옆에 불탑사진이나 고승의 사진, 혹은 암베드카르 (인도 근현대불교의 중흥자)의 사진을 걸어놓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고려시대 때에는 각 가정에 불단을 조성해놓고 집안의 무사와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면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불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초소형 불감은 스님들이 먼곳을 여행할 때 바랑속에 넣고 다니기도 했고, 대부분은 불자들이 가정에서 모시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숭유억불시대인 조선조에 이르러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당시 유생들은 전국 명산 대찰에 모셔져 있던 대부분의 불상들을 훼손시켰는데, 그 가운데 밖에 모셔져있는 석불의 훼손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불상을 집에 모셔두면 좋지 않다는 속설도 그때 생겨난 것으로 짐작됩니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존상을 집에 모셔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 불단을 마련해놓고 불단 앞에 앉아 명상을 하거나 독경 예경까지 올린다면 그보다 더 성스러운 신행생활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가을, 어느 불자귀농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님, 제가 불상 한점을 보시받았는데, 집에 불단을 꾸며 모시고자 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모셔야 할까요? 혹시 행해야 할 의식이 따로 있습니까?"

부처님의 존상(불상, 불화)을 가정에 모실 경우, 반드시 어느 곳에 모셔야 한다는 규정이나 정형화된 예식은 없습니다. 굳이 적당한 장소를 추천한다면, 수행(좌선과 행선)과 예불을 할 수 있는 조요한 공간을 권장하며, 가족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실의 한적한 곳도 좋습니다. 

불단을 꾸밀 때, 가능하다면 작은 향로(향꽂이) 하나쯤은 놓여 있어야 하며, 촛대나 화병은 선택사항 입니다. 이 승의 경우 부처님 앞에는 향꽂이, 부처님 좌우에는 양초모양의 전등 그리고 동자상이나 어린이들에게 친밀감을 줄 수 있는 아기사슴 새끼곰 등 동물인형을 배치시켜 놓았습니다. 불단 조성은 상시 열어놓는 오픈 방식으로 해도 되고, 커튼이나 미닫이문이 설치된 개폐식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불단의 기능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서 기상과 함께 개방하여 아침예불을 드리고, 저녁시간 저녁예불 후에 문을 닫습니다. 


사찰에서는 부처님 조성과 관련된 각종 의례들이 행해집니다. 특히 한국사찰의 경우 불상을 옮길 때는 '이운식'을 하고, 법당에 모실 때는 반드시 '점안식'을 거행합니다. 점안은 부처님 존상의 눈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서,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형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는 이운식이나 점안의식이 없습니다. 2004년, 미얀마 양곤의 마하시수도원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봉불의식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의식은 의외로 한국에 비해 매우 간결했습니다. 즉, 삼보예찬ㆍ재가자들이 불상을 조성해 비구상가에 보시하는 게송. 그리고 회향게송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불단을 조성할 때 스님들을 초청해 봉안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승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모시고 있던 여러 불상 중에서 불자가 원하는 불상을 선택하여 탁자위에 올려놓고, 간략한 삼보의례와 축원의식을 마친 뒤 흰 종이와 보자기로 감싸 들고가게 합니다. 그리고 집에 모시고 가면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봉불의식을 거행하도록 권합니다. 




이 예식절차는 소승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위 <메모 사진>의 중간에 나오는 빨리어 게송은 재가자가 불상을 조성하여 승가에 공양올릴 때 독송하는 테라와다불교의 정형구를 편집한 것입니다. 절이나 선원에 자주 못 가더라도 집안에 불단을 조성해놓고 명상ㆍ조석예불ㆍ일요가족법회, 혹은 초하루 보름이나 각종 기념일(생일,제사)에 의례를 행하면서, 삼보의 공덕을 회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긴다면, 실로 훌륭한 신행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불단을 꾸며놓지 않더라도 책상이나 장식장에 불상이나 불화를 모셔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나 일반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으럽게 부처님의 존상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므로 권장하는 바입니다. 


흔히 "부처님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시각ㆍ청각ㆍ촉각을 통해 마음의 대상들을 좀더 쉽고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입니다. 이것은 사람사는 세상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불상은 사실 사람에 의해 나무나 돌 금속 등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그 형상을 2,600년전의 실제 부처님을 뵙는다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 형상은 수행자의 신심과 노력을 고취시키고, 없던 사띠(알아차림)를 생겨나게 하며, 미약한 사띠를 분명하게 해줄 것입니다.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아라한 성자에게 부처님 형상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형상일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그 형상은 부처님의 위대한 행적과 고귀한 가르침을 잊지 않게 해주고, 마침내 생사해탈을 향해 나아가도록 신심과 정진의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마시고, 부담없이 누구라도 불단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조성된 불단 앞에서 부처님께 예경드리는 것은 불자로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행위입니다. 설령 불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불상이나, 불화사진 액자 하나쯤 집에 모셔두고 일상적으로 합장예경 올리는 참다운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불멸 2565년 12월 24일

천림산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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