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류를 건너는 법ㆍ4 / 빤냐완따 스님

Kusalo
2022-05-08
조회수 715


3. 어떠한 상황에도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화>를 내서는 않됩니다. 

아주 작은 화일지라도 


<팔정도>의 두번째 구성요소가 <바른 생각>입니다. <바른 생각>은 <바른 견해>와 함께 <계ㆍ정ㆍ혜> 3학 가운데 혜(지혜)의 영역에 속합니다. <바른 생각>은 일상의 모든 정신적 행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삶은 대체로 두 바퀴로 굴러갑니다. 그 두 개의 바퀴가 바로 감각적욕망(탐욕)과 성냄(화)입니다. 이 세상에 과연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미움과 성냄을 벗어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탐욕과 성냄은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3가지의 <바른 생각>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욕망을 떠난 마음

나쁜 의도를 갖지 않는 마음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 마음

비구들이여, 이런 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여기에서 <나쁜 의도>란 <성냄ㆍ분노ㆍ증오>를 의미합니다. <해치려는 생각>은 남에게 폭력이나 살생 등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입니다. 이 2가지 생각을 크게 보면 <화>라고 하는 공통된 심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의도> <해치려는 생각>은 건강하지 못한 불건전한 마음으로서 <폭류>에 휩쓸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며, <폭류>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폭류>를 건너기 위해서는 이와같은 불건전한 마음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불선한 마음까지 남김없이 제거되어야 <폭류>를 건널 수 있습니다. <폭류>를 건너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바른 생각>을 계발해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매일 때때로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바른 생각> 상태인가? 불건전한 상태인가? 생각 생각마다 자애와 연민심이 함께 하는가? 성내는 마음, 해치려는 마음이 함께하고 하는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분노하는 자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그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서는 않되느니라" 하셨습니다. <화>는 스스로를 불태우고 상대방도 불타게 합니다. 제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남에게 화를 내면 <인과의 법칙>에 따라 그 화가 반드시 내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옵니다. 즉시 돌아오기도 하고 곧 돌아오기도 하고 훗날 돌아오기도 하고 아주 먼 훗날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옵니다. 


"비구들이여, 양날 톱으로 

도둑이나 강도가 자신의 사지를 

마디마디 잘라 내더라도 

마음에 분노를 일으킨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니라.


비구들이여, 그런 경우에도 

그대들은 이와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내 마음은 그것에 영향받지 않으리라. 

악담을 뱉지 않으리라. 

이로움과 연민의 마음으로 머물리라.

자애로운 마음으로 증오하지 않으리라. 

자애로운 마음을 방출하며 머물리라. 

그리하여 이 사람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풍요롭고 

광대하고 무한하고 원한없고 악의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득 채우며 머물리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같이 공부지어야 하느니라."


                  [MN 21] <톱의 비유 경>



4. 입은 재앙의 문


의도를 일컬어 <업>(Kamma) 이라고도 합니다. 의도가 생각의 영역에 머물고 있으면 <의업>이 되고, 입을 통해 말로 표출되면 <구업>이 되고, 행동으로 옮겨지면 <신업>이 됩니다. 사람들은 매순간 업을 짓습니다. 일평생 업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업은 6근(안이비설신의) 가운데 <신ㆍ구ㆍ의> 세 통로를 통해서만 짓게 됩니다. 3가지 업 가운데 특히 입으로 짓는 <구업>은 인간관계 속에서 일생동안 가장 빈번하게 짓는 업입니다. 


말은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상대방과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말 안하고 살 수 있습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처럼 사람이 말을 못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말 한 마디에 천냥빛을 갚으며, 세치 혀가 삼족을 멸하게도 한다"는 속담은 구업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말들입니다. 


<팔정도>의 세번째 구성요소가 <바른 언어>(혹은 바른 말)입니다. <바른 말>은 4가지 말을 삼가하는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바른 언어란 무엇인가?

거짓말을 삼가하고 

이간말을 삼가하고 

거친말을 삼가하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하는 것

비구들이여, 이런 것을 

<바른 언어>라 하느니라."


수행자는 이와같이 4가지 불건전한 말을 삼가해야 하고, 대신에 1.진신된 말 2.화합시키는 말 3.부드러운 말 4.이익되게 하는 말만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1.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어야 하고 2.의미있는 말이어야 하고 3.아무리 의미있는 말일지라도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불건전하지 않고, 설령 건전한 말일지라도 넘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말하기 전에 항상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림 하고, 말할 때는 분명한 앎과 함께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있으면 말이 부드럽고 안정감이 생기며, 말하는 도중에 번뇌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여 꼭 해야 할 말만을 하게 됩니다.


"비구들이여,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이나 

백 세가 되었더라도 

때맞춰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가르침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계율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하지 못하고, 

알맞은 말을 하지 못하고, 

이유가 분명한 말을 하지 못하고, 

한계가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를 두고 <어리석은 장로>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비록 젊어서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행복한 청춘을 부여받은 

인생의 초년일지라도 

때맞춰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의미있는 말을 하고, 

가르침에 맞는 말을 하고, 

계율에 맞는 말을 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하고, 

알맞은 말을 하고, 

이유가 분명한 말을 하고, 

한계가 있는 말을 하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한다면, 

그를 두고 <지혜로운 장로>라 하느니라."


                      [AN 4:22] <우루웰라 경>



입은 재앙의 문이며, 악도로 연결된 통로입니다. 또한 입은 행복을 부르는 문이며, 천상으로 올라가는 하늘길입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바른 말 한마디 한마디 삼마와짜(정언)는 열반을 향한 조용한 울림인 동시에 폭류를 건너기 위한 간절한 염원입니다.



5. 계율은 열반의 주춧돌입니다. 

특히 5계와 8계의 실천은 폭류를 

건너기 위해 절대 놓아서는 않되는 

생명줄입니다. (바른 행위)


6. 노력과 인내는 폭류를 건너기 위한 

<노>요 <삿대>입니다. (바른 정진)


7. 진정한 사띠(알아차림, 마음챙김, 

새김. 주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바른 사띠, 정념)


8. 선정에 들고(입정) 나는(출정) 것이 

능숙해질 때까지 바른 삼매를 

닦아나가야 합니다. (바른 집중)


9. <팔정도경>(도분별경)의 독송ㆍ

암송을 일상화 해야 합니다. 

뜻을 새기면서 매일 때때로 

<팔정도경>의 빨리어 원문을 

독송ㆍ암송 하다보면 마음속에 

각인되면서 <팔정도>를 통한 

일상점검이 가능해집니다. 

일기장 쓰듯 <팔정도 노트>를 만들어 

매일 점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5 ~ 9에 대한 설명은 추후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폭류를 건너는 법ㆍ1>의 서두에서 중생세계의 보편적 특성 중 하나인 갈등 문제에 대해 급단적인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사람들 누구나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수행자들도 일상의 삶속에서 온갖 크고 작은 갈등을 겪습니다. 비유컨대 갈등은 폭류 한가운데 나타나는 격랑 혹은 소용돌이와 같은 것으로서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수행주제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와같은 갈등문제를 수행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삶 따로 수행 따로>란 얘기입니다. 선원이나 집중수행처에서 좌선이나 행선을 합니다. 지하철에 앉아 좌선을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행선을 합니다. 좌선과 행선을 하다보면 흙탕물이 가라앉듯 원숭이처럼 날뛰던 마음이 차츰 고요해집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그 고요함 속에서 담마(법)를 보려고 합니다. 무상ㆍ고ㆍ무아를 이해(증득)하려고 합니다.


고요해지면 온갖 삼매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삼매체험을 수행의 진전, 수행의 본질로 생각하여 집착합니다. 삼매의 고요함이나 삼매의 희열을 즐기려고 합니다. 수행자라면 물론 삼매의 근력을 길러야 합니다. 삼매체험도 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수행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의 본질은 괴로움(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그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성찰해서 그 괴로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성제>(4가지 성스러운 진리), 무상의 진리, 무아의 진리를 증득하여 궁극의 해탈ㆍ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발생지점이야마로 

괴로움의 소멸점 입니다. 

고의 일어남을 현장에서 절감할 때, 

그 일어남의 근본원인을 분명히 

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고의 소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수행의 관건은 '수행'을 '일상의 삶'과 

얼마나 잘 일치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절 어느 종무소나, 어느 수행처 어느 공양간에서나 사람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라고 자처하는 분들, 10년 20년을 절에서 살거나 절에 다니면서 수행해 왔다는 분들이 서로 극심한 갈등 겪고 있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겪지 않아도 될 갈등입니다. 갈등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그 갈등을 수행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삶 따로 수행 따로>였기 때문입니다.


<폭류를 건너는 법>은 폭류 속에서 "머물지(Appatiṭṭh)도 않고, 발버둥치지(anāyūhaṃ)도 않는" 것입니다. 즉, 양극단을 뛰어넘어 <중도>(팔정도)를 올바르고 지혜롭게 실천수행하는 것이 <폭류를 건너는 법>입니다. 이번 기회에 <팔정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새겨두시길 바라며, 사랑과 미움, 들뜸과 우울, 슬픔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 윤회하는 세계로는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서원 세우시고 하루하루 헛되지 않게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 끝 >


                *


불멸 2566년 5월 어느날 

천림산 기슭에서 

메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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