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전도를 시작하신 이후 20년 동안은 자신을 도와줄 시자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붓다의 시중을 들어 드려야 할 경우가 생기면, 여러 비구들이 때와 형편에 따라서 붓다를 도와드렸습니다.
초기에 붓다의 시중을 자주 들어드렸던 비구들로는 붓다께서 병으로 누워 계실 때 약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우빠와나, 밤늦도록 수행을 계속하시는 붓다의 건강을 염려해서 귀신의 흉내를 냈다가 꾸중을 들었던 나가사말라, 그리고 나기따, 수나캇따, 쭌다, 사가따, 라다, 메기야 비구 등 여덟 비구들이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비구들은 고정적인 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붓다의 뜻을 잘 헤아려 붓다를 불편 없이 도와드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들 젊은 비구들은 깨달음의 큰 뜻을 세웠기 때문에, 때로는 붓다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종종 붓다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예를 들어보면, 어느 날 붓다께서 나가사말라 비구와 같이 길을 가시다가 갈림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가사말라 비구는 붓다께서 선택하신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 고집을 부리며 혼자 다른 길로 갔다고 합니다.
결국 붓다와 헤어져 다른 길로 갔던 나가사말라 비구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나 봉변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붓다께서는 그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고 합니다.
또 어느 날 붓다께서 메기야 비구와 같이 잔뚜 마을을 향해 길을 가시다가 망고나무숲을 지나시게 되었는데, 그 숲에 마음이 끌린 메기야는 그 숲에 머물면서 고행을 해보고 싶다고 붓다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붓다께서는 고행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세 번을 만류하셨으나 메기야 비구가 말을 듣지 않자, 할 수 없이 메기야 비구를 남겨 두고 홀로 길을 떠나셨습니다.
며칠 후 고개를 떨구고 돌아온 메기야 비구는, 숲에서 열심히 고행을 실천했으나, 육체적인 욕망과 악한 생각과 잔인한 생각 등 세 가지 망상들이 쉼없이 일어나서 결국 마음 집중에 실패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붓다 앞에 참회드렸다고 합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 사왓티성의 제따와나 사원에서 비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구들아! 그동안 여러 비구들이 내 시중을 잘 들어주었지만, 때때로 내가 이 길로 가자고 할 때 고집을 부리고 딴 길로 가는 비구도 있었고, 내 가사와 발우를 땅에 떨어뜨려 버리는 비구도 있었다. 나는 이제 늙었구나! 이제부터 항상 나를 따르며 나를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시자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때 붓다의 연세는 55세이셨습니다.
붓다의 말씀을 듣고 수제자들인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께서 서로 자신들이 시자의 임무를 맡겠다고 나섰으나, 붓다께서는 두 사람들은 이 세상에 진리를 전파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따로 있다며,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두 수제자들 이외에도 많은 비구들이 서로 시자 임무를 자청했지만 붓다께서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허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뒷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자신이 붓다의 시자를 자청하고 싶었지만, 붓다께서 자신을 필요로 하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던 것입니다.
마침 다른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야말로 가장 적임자라며 추천을 했고, 붓다께서도 아난다 존자가 시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모인 비구들이 모두 아난다가 적임자라고 추천을 하니, 아난다가 그 역할을 맡아 주어야겠다. 그대가 앞으로 내 시자가 되어 자신의 일처럼 붓다를 돕거라!”
그러나 붓다의 지명을 받은 아난다 존자는, 여덟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그 조건들을 붓다께서 받아주셔야 시자의 임무를 맡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붓다에게 보시된 가사를 받지 않는다.
2. 나는 붓다에게 보시된 음식을 먹지 않는다.
3. 나는 붓다의 침실에서 자지 않는다.
4. 나는 붓다께서 공양을 받기 위해 초대된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함께 가지 않는다].
5. 붓다께서는 내가 [요청하는] 신도의 초대에 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야 한다.
6. 붓다께서는 먼 곳으로부터 붓다를 뵙기 위해 찾아온 손님을 나에게 소개해주셔야 한다[붓다께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야 한다].
7. 붓다께서는 내가 의심나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드리면 언제라도 대답을 해주셔야 한다.
8. 붓다께서는 내가 참석치 못한 법회에서 설하신 법문을 내게 다시 말씀해주셔야 한다.
붓다를 잘 모시고 싶어 하는 아난다 존자의 속마음을 잘 헤아리고 계셨던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제의한 여덟 가지 조건을 쾌히 응낙하셨습니다.
이로써 붓다의 시자가 된 아난다 존자는, 이후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실 때까지 25년 동안 마치 그림자처럼 붓다를 모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숫도다나 왕의 동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붓다와는 사촌간이었는데,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고 2년 만에 고향인 까삘라왓투성을 찾으셨을 때 출가를 해서 비구가 된 분입니다.
비구가 된 후 아난다 존자는 열심히 수행을 했으며, 오래지 않아 뿐냐 만따니뿟따 비구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인 소따빳띠를 성취했습니다.
붓다의 시자가 된 아난다 존자는 낮이나 밤이나 스승을 위해 헌신적으로 시중을 들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깊은 밤 붓다께서 잠자리에 드시고 나서도 뜬눈으로 붓다의 방 주위를 살폈으며, 붓다께서 몸이 편치 않으실 때면 때로 계를 어겨가면서까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난다 존자는 붓다에게 가르침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었고, 고민이 있는 동료 비구들의 상담역을 맡기도 했으며, 때로는 붓다를 대신해서 설법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한편 아난다 존자는 비구니 승가의 설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인데,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붓다에게 세 번이나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건의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여성의 교화에 많은 힘을 기울이셨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설법을 모두 듣고 완전하게 암송하던 유일한 제자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불렸으나 붓다가 대열반에 드실 때까지 아라한과를 성취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열심히 수행을 해서 제1차 결집 직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고, 그 입에서 붓다께서 생전에 설하신 법문들을 모두 독송해냄으로써, 그를 근거로 경전들이 결집될 수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120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사후에 그 유해를 둘러싸고 신도들간에 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갠지스강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불을 당겨 그 몸을 태우고’ 유골을 신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도록 했다고 합니다.
-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것> 中, 도성(뿐냐산또) 큰스님, 삼각형 프레스, 2003년.
붓다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전도를 시작하신 이후 20년 동안은 자신을 도와줄 시자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붓다의 시중을 들어 드려야 할 경우가 생기면, 여러 비구들이 때와 형편에 따라서 붓다를 도와드렸습니다.
초기에 붓다의 시중을 자주 들어드렸던 비구들로는 붓다께서 병으로 누워 계실 때 약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우빠와나, 밤늦도록 수행을 계속하시는 붓다의 건강을 염려해서 귀신의 흉내를 냈다가 꾸중을 들었던 나가사말라, 그리고 나기따, 수나캇따, 쭌다, 사가따, 라다, 메기야 비구 등 여덟 비구들이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비구들은 고정적인 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붓다의 뜻을 잘 헤아려 붓다를 불편 없이 도와드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들 젊은 비구들은 깨달음의 큰 뜻을 세웠기 때문에, 때로는 붓다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종종 붓다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예를 들어보면, 어느 날 붓다께서 나가사말라 비구와 같이 길을 가시다가 갈림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가사말라 비구는 붓다께서 선택하신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 고집을 부리며 혼자 다른 길로 갔다고 합니다.
결국 붓다와 헤어져 다른 길로 갔던 나가사말라 비구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나 봉변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붓다께서는 그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고 합니다.
또 어느 날 붓다께서 메기야 비구와 같이 잔뚜 마을을 향해 길을 가시다가 망고나무숲을 지나시게 되었는데, 그 숲에 마음이 끌린 메기야는 그 숲에 머물면서 고행을 해보고 싶다고 붓다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붓다께서는 고행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세 번을 만류하셨으나 메기야 비구가 말을 듣지 않자, 할 수 없이 메기야 비구를 남겨 두고 홀로 길을 떠나셨습니다.
며칠 후 고개를 떨구고 돌아온 메기야 비구는, 숲에서 열심히 고행을 실천했으나, 육체적인 욕망과 악한 생각과 잔인한 생각 등 세 가지 망상들이 쉼없이 일어나서 결국 마음 집중에 실패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붓다 앞에 참회드렸다고 합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 사왓티성의 제따와나 사원에서 비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구들아! 그동안 여러 비구들이 내 시중을 잘 들어주었지만, 때때로 내가 이 길로 가자고 할 때 고집을 부리고 딴 길로 가는 비구도 있었고, 내 가사와 발우를 땅에 떨어뜨려 버리는 비구도 있었다. 나는 이제 늙었구나! 이제부터 항상 나를 따르며 나를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시자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때 붓다의 연세는 55세이셨습니다.
붓다의 말씀을 듣고 수제자들인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께서 서로 자신들이 시자의 임무를 맡겠다고 나섰으나, 붓다께서는 두 사람들은 이 세상에 진리를 전파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따로 있다며,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두 수제자들 이외에도 많은 비구들이 서로 시자 임무를 자청했지만 붓다께서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허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뒷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자신이 붓다의 시자를 자청하고 싶었지만, 붓다께서 자신을 필요로 하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던 것입니다.
마침 다른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야말로 가장 적임자라며 추천을 했고, 붓다께서도 아난다 존자가 시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모인 비구들이 모두 아난다가 적임자라고 추천을 하니, 아난다가 그 역할을 맡아 주어야겠다. 그대가 앞으로 내 시자가 되어 자신의 일처럼 붓다를 돕거라!”
그러나 붓다의 지명을 받은 아난다 존자는, 여덟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그 조건들을 붓다께서 받아주셔야 시자의 임무를 맡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붓다에게 보시된 가사를 받지 않는다.
2. 나는 붓다에게 보시된 음식을 먹지 않는다.
3. 나는 붓다의 침실에서 자지 않는다.
4. 나는 붓다께서 공양을 받기 위해 초대된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함께 가지 않는다].
5. 붓다께서는 내가 [요청하는] 신도의 초대에 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야 한다.
6. 붓다께서는 먼 곳으로부터 붓다를 뵙기 위해 찾아온 손님을 나에게 소개해주셔야 한다[붓다께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야 한다].
7. 붓다께서는 내가 의심나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드리면 언제라도 대답을 해주셔야 한다.
8. 붓다께서는 내가 참석치 못한 법회에서 설하신 법문을 내게 다시 말씀해주셔야 한다.
붓다를 잘 모시고 싶어 하는 아난다 존자의 속마음을 잘 헤아리고 계셨던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제의한 여덟 가지 조건을 쾌히 응낙하셨습니다.
이로써 붓다의 시자가 된 아난다 존자는, 이후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실 때까지 25년 동안 마치 그림자처럼 붓다를 모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숫도다나 왕의 동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붓다와는 사촌간이었는데,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고 2년 만에 고향인 까삘라왓투성을 찾으셨을 때 출가를 해서 비구가 된 분입니다.
비구가 된 후 아난다 존자는 열심히 수행을 했으며, 오래지 않아 뿐냐 만따니뿟따 비구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인 소따빳띠를 성취했습니다.
붓다의 시자가 된 아난다 존자는 낮이나 밤이나 스승을 위해 헌신적으로 시중을 들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깊은 밤 붓다께서 잠자리에 드시고 나서도 뜬눈으로 붓다의 방 주위를 살폈으며, 붓다께서 몸이 편치 않으실 때면 때로 계를 어겨가면서까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난다 존자는 붓다에게 가르침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었고, 고민이 있는 동료 비구들의 상담역을 맡기도 했으며, 때로는 붓다를 대신해서 설법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한편 아난다 존자는 비구니 승가의 설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인데,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붓다에게 세 번이나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건의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여성의 교화에 많은 힘을 기울이셨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설법을 모두 듣고 완전하게 암송하던 유일한 제자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불렸으나 붓다가 대열반에 드실 때까지 아라한과를 성취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열심히 수행을 해서 제1차 결집 직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고, 그 입에서 붓다께서 생전에 설하신 법문들을 모두 독송해냄으로써, 그를 근거로 경전들이 결집될 수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120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사후에 그 유해를 둘러싸고 신도들간에 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갠지스강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불을 당겨 그 몸을 태우고’ 유골을 신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도록 했다고 합니다.
-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것> 中, 도성(뿐냐산또) 큰스님, 삼각형 프레스,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