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앙굴리말라는 본명이 아힝사까로 꼬살라 왕국의 대신인 박가와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만따니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나라 안에 있던 칼, 창 등 모든 무기들이 저절로 빛을 내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신하들로부터 그 같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다음 날 아침 박식한 박가와 대신을 불러 왜 그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왕의 질문에 박가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제 제 처가 사내아기를 낳았습니다.”
왕이 되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내가 사내아기를 낳은 것과 무기들이 빛을 발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오?”
“대왕이시여!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 자식은 앞으로 산적이, 그것도 흉악한 산적이 될 운명을 타고났으며, 그 때문에 나라 안의 무기들이 스스로 빛을 발한 줄로 생각되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의 아들이 혼자서 산적짓을 할 것 같소, 아니면 무리를 지어 산적짓을 할 것 같소?”
“예, 대왕이시여! 제 아들은 홀로 산적질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왕이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훗날 화근이 될 아들을 지금 없애버리지 않는 거요?”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만, 제 아들은 홀로 산적질을 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능히 그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불쌍한 늙은이를 봐서라도 유일한 혈육인 제 자식놈을 죽이라는 명령만을 내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위대한 대왕이시여!”
박가와가 애원을 하자 왕은 나라에 공이 많은 대신의 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식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힝사까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딱까실라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아힝사까는 딱까실라 학교 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명랑한 아이였으며, 누구의 말에도 잘 순종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더구나 아힝사까는 매우 총명하여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힝사까를 시기하는 학생들은 그에 대한 험담을 퍼트렸고, 사사건건 아힝사까의 행동을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꾸 그 같은 일이 반복되자 선생님 또한 아힝사까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모든 과정을 마친 아힝사까가 졸업을 할 때가 되었을 때, 선생님이 아힝사까를 불렀습니다.
“아힝사까야! 이제 너의 공부가 모두 끝났다. 그러니 졸업 전에 내게 수업료를 내도록 하려무나!”
“예! 선생님! 그런데 수업료를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아힝사까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아힝사까야! 나는 돈을 받지 않는단다. 돈 대신 너는 천 명의 사람을 죽여 그 오른쪽 손가락을 잘라와야 한다.”
아힝사까를 미워한 선생님은 그를 골탕먹일 생각으로 끔찍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힝사까는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힝사까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자, 잔인한 선생님은 아힝사까를 다시 불러서 또 한번 다짐을 했습니다.
“아힝사까야! 꼭 기억하거라. 한 사람에게서 두 개의 손가락을 잘라 와서는 안 된다. 꼭 한 사람에게서 한 개씩만 잘라 오너라.”
천성이 착했던 아힝사까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사람의 손가락을 얻을 수 있을지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던 순진한 아힝사까는 허리에 칼을 차고 길을 떠났습니다.
어리석은 아힝사까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의 무성한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발견하면 달려나가서 칼로 베어 죽인 다음 오른손에서 손가락을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시체는 나무에 걸어 독수리와 까마귀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점점 손가락들이 많아지게 되자 아힝사까는 손가락들을 엮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의 이름은 앙굴리말라(앙굴리: 손가락 + 말라: 목걸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순진하던 아힝사까는 이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모두 죽여버리는 무섭고 잔인한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앙굴리말라의 악명이 높아지자 행인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그 근처를 지나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 목걸이를 목에 건 앙굴리말라가 칼을 들고 숲에서 뛰어나오며 ‘나는 앙굴리말라다! 모두 게 섯거라!’ 하고 소리치면, 공포에 질린 행인들은 스스로 오른손에서 손가락 한 개씩 잘라서 앙굴리말라에게 바치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는 인정사정 없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앙굴리말라의 악명이 점차 높아지자 이제 그가 숨어 있는 길에는 인적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손가락이 더 필요한 앙굴리말라는 다른 곳으로 옮겨 살인을 계속했고, 마침내 나라 전체가 앙굴리말라에 대한 공포로 술렁거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온 백성들이 두려움으로 떨게 되자 왕은 이 흉악한 산적을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편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아들이 흉악한 산적이 되긴 했지만 우리에겐 둘도 없는 아들이 아닙니까? 왕이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니 걱정스럽습니다. 당신이 한번 아들을 만나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꾸짖어 보세요.”
그러자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그 녀석이 우리 아들이긴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요. 만약 내가 그 녀석을 만나러 가면, 그 녀석은 나도 죽여 버리고 말 거요.”
그러나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착하고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숲으로 가서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밖에 없겠다.’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줄 음식을 싸들고, 아들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앙굴리말라는 이미 999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울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한 번도 피묻은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몸도 씻지 못한 채, 숲속에서만 지낸 앙굴리말라의 몰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귀신의 형상이었습니다. 앙굴리말라 자신도 이처럼 짐승같은 생활이 죽도록 싫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워 스승과의 약속을 지킨 다음, 자유로운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명 때문에 인근에 인적이 끊어져서 마지막 한 개의 손가락을 얻기가 어렵게 되자, 앙굴리말라는 몹시 다급해졌습니다.
‘만약 내 앞에 어머니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머니를 죽여서라도 기어코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우고 말겠다.’
그날 아침 붓다께서는 평소와 같이 명상에 드셔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다가 앙굴리말라의 일을 아시게 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가 사악한 스승에게 속아 그의 어머니마저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불쌍한 앙굴리말라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나서서 앙굴리말라와 그의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어야겠다.’
붓다께서는 발우를 들고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를 뒤쫓아 깊은 숲속으로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붓다께서 숲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붓다를 말렸습니다.
“스님!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스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저 숲속에는 앙굴리말라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요. 흉악한 앙굴리말라는 아마 스님까지 죽이고 말 거예요.
그는 세상 어느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도 존경하지 않아요.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앙굴리말라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고, 우리들도 오늘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마 그 무서운 살인자가 오늘은 이 마을까지 달려올 거예요. 스님! 어서 이 마을을 떠나세요.”
마을 사람들은 처음 뵙는 수행자가 그 살인자에게 화를 당할까 봐 세 번이나 만류를 했지만, 붓다께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숲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한편 숲속에 숨어 있던 앙굴리말라는 그의 어머니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어리석고 불쌍한 여인이 오고 있구나. 나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저 불쌍한 어머니마저 죽일 수밖에 없구나!”
제정신을 잃은 앙굴리말라는 자기 어머니마저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우려고 칼을 빼들고 어머니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 위급한 순간에 붓다께서는 갑자기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셔서 앙굴리말라와 그의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으셨습니다. 붓다께서 갑자기 앞에 나타나시자 앙굴리말라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 하늘이 나를 도우시는구나. 이제 우리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도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앙굴리말라는 칼을 휘두르며 붓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서서 명상에 드셨습니다.
‘아마, 앙굴리말라의 눈에는 내가 뛰어 도망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혼신의 힘을 다해 붓다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숨이 턱에 차고, 온몸이 땀에 젖고, 뼈마디가 욱신거릴 정도로 달렸으나 어찌된 일인지 붓다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앙굴리말라는 탄식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코끼리보다도 말보다도 사슴보다도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짐승들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었고, 그래도 한 번도 피로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다. 내가 어째서 저 수행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단 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앙굴리말라가 붓다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거기 서! 거기 꼼짝 말고 멈추어 서 있으란 말이다!”
“앙굴리말라야!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서 있다. 멈추지 못한 것은 바로 너이지 않느냐?”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를 향해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도무지 붓다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수행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 수행자는 그렇게 빨리 달렸으면서도 자기는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을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평소와 달리 지금 몹시 피곤하다. 아마 저 수행자의 말속에는 무언가 감춰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앙굴리말라가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수행자께서는 그 자리에 그냥 서 계셨다고 하는데, 나는 왜 당신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단 말입니까?”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앙굴리말라야!
나는 악행을 멈추어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항상 자비롭다.
그러난 너는 악행을 멈추지 못해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몹시 잔인하구나.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지만 너는 멈추지 못하였느니라.”
붓다의 말씀을 듣고 나자, 앙굴리말라의 마음속에 갑자기 환희심이 솟구쳤습니다.
앙굴리말라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던져버리고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붓다께서는 어리석음으로 무서운 살인죄를 범한 앙굴리말라에게 자비의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와 그의 어머니를 사원으로 데려가서 앙굴리말라에게 비구계를 주셨습니다.
그같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게 된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도 흉악한 살인자인 자신의 아들을 순식간에 훌륭한 수행자로 만들어주신 붓다 앞에 엎드려 깊은 감사를 올렸습니다.
한편 흉악한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잡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왕은, 붓다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오백 명의 군사들과 오백 마리의 말들을 앞세워 붓다께서 머무시는 사원으로 찾아왔습니다.
붓다께서는 왕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계시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하시며 왕에게 물으셨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슨 일이요? 왜 이렇게 군사들을 일으키셨소? 빔비사라 왕이 싸움이라도 걸어온 것이오? 아니면 릿차위 태자나 다른 왕족들이 분란이라도 일으켰단 말이오?”
“아닙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제 왕국 안에 요즘 앙굴리말라라는 흉포한 산적이 나타나서 무고한 백성들을 수없이 다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으러 이렇게 나섰으니 저와 제 군사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아! 그렇습니까?
그러나 대왕이시여!
대왕이 만일 이 자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머리를 깎고 황색가사로 갈아입어 비구로 다시 태어난 앙굴리말라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왕은 지체 없이 대답했습니다.
“거룩한 붓다시여! 저는 무릎을 꿇어 그 비구에게 예를 올리겠나이다.”
그제서야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 비구를 부르셨습니다. 그 무서운 앙굴리말라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왕은 약속대로 그에게 예를 올렸으나, 군사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도망을 쳤습니다.
붓다께서는 도망치는 군사들을 모두 불러 앙굴리말라 비구 앞에 앉힌 다음 그들을 위해 설법을 해주셨습니다.
-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것> 中, 도성(뿐냐산또) 큰스님, 삼각형 프레스, 2003년.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본명이 아힝사까로 꼬살라 왕국의 대신인 박가와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만따니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나라 안에 있던 칼, 창 등 모든 무기들이 저절로 빛을 내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신하들로부터 그 같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다음 날 아침 박식한 박가와 대신을 불러 왜 그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왕의 질문에 박가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제 제 처가 사내아기를 낳았습니다.”
왕이 되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내가 사내아기를 낳은 것과 무기들이 빛을 발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오?”
“대왕이시여!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 자식은 앞으로 산적이, 그것도 흉악한 산적이 될 운명을 타고났으며, 그 때문에 나라 안의 무기들이 스스로 빛을 발한 줄로 생각되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의 아들이 혼자서 산적짓을 할 것 같소, 아니면 무리를 지어 산적짓을 할 것 같소?”
“예, 대왕이시여! 제 아들은 홀로 산적질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왕이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훗날 화근이 될 아들을 지금 없애버리지 않는 거요?”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만, 제 아들은 홀로 산적질을 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능히 그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불쌍한 늙은이를 봐서라도 유일한 혈육인 제 자식놈을 죽이라는 명령만을 내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위대한 대왕이시여!”
박가와가 애원을 하자 왕은 나라에 공이 많은 대신의 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식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힝사까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딱까실라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아힝사까는 딱까실라 학교 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명랑한 아이였으며, 누구의 말에도 잘 순종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더구나 아힝사까는 매우 총명하여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힝사까를 시기하는 학생들은 그에 대한 험담을 퍼트렸고, 사사건건 아힝사까의 행동을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꾸 그 같은 일이 반복되자 선생님 또한 아힝사까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모든 과정을 마친 아힝사까가 졸업을 할 때가 되었을 때, 선생님이 아힝사까를 불렀습니다.
“아힝사까야! 이제 너의 공부가 모두 끝났다. 그러니 졸업 전에 내게 수업료를 내도록 하려무나!”
“예! 선생님! 그런데 수업료를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아힝사까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아힝사까야! 나는 돈을 받지 않는단다. 돈 대신 너는 천 명의 사람을 죽여 그 오른쪽 손가락을 잘라와야 한다.”
아힝사까를 미워한 선생님은 그를 골탕먹일 생각으로 끔찍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힝사까는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힝사까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자, 잔인한 선생님은 아힝사까를 다시 불러서 또 한번 다짐을 했습니다.
“아힝사까야! 꼭 기억하거라. 한 사람에게서 두 개의 손가락을 잘라 와서는 안 된다. 꼭 한 사람에게서 한 개씩만 잘라 오너라.”
천성이 착했던 아힝사까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사람의 손가락을 얻을 수 있을지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던 순진한 아힝사까는 허리에 칼을 차고 길을 떠났습니다.
어리석은 아힝사까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의 무성한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발견하면 달려나가서 칼로 베어 죽인 다음 오른손에서 손가락을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시체는 나무에 걸어 독수리와 까마귀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점점 손가락들이 많아지게 되자 아힝사까는 손가락들을 엮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의 이름은 앙굴리말라(앙굴리: 손가락 + 말라: 목걸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순진하던 아힝사까는 이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모두 죽여버리는 무섭고 잔인한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앙굴리말라의 악명이 높아지자 행인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그 근처를 지나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 목걸이를 목에 건 앙굴리말라가 칼을 들고 숲에서 뛰어나오며 ‘나는 앙굴리말라다! 모두 게 섯거라!’ 하고 소리치면, 공포에 질린 행인들은 스스로 오른손에서 손가락 한 개씩 잘라서 앙굴리말라에게 바치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는 인정사정 없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앙굴리말라의 악명이 점차 높아지자 이제 그가 숨어 있는 길에는 인적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손가락이 더 필요한 앙굴리말라는 다른 곳으로 옮겨 살인을 계속했고, 마침내 나라 전체가 앙굴리말라에 대한 공포로 술렁거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온 백성들이 두려움으로 떨게 되자 왕은 이 흉악한 산적을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편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아들이 흉악한 산적이 되긴 했지만 우리에겐 둘도 없는 아들이 아닙니까? 왕이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니 걱정스럽습니다. 당신이 한번 아들을 만나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꾸짖어 보세요.”
그러자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그 녀석이 우리 아들이긴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요. 만약 내가 그 녀석을 만나러 가면, 그 녀석은 나도 죽여 버리고 말 거요.”
그러나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착하고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숲으로 가서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밖에 없겠다.’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줄 음식을 싸들고, 아들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앙굴리말라는 이미 999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울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한 번도 피묻은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몸도 씻지 못한 채, 숲속에서만 지낸 앙굴리말라의 몰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귀신의 형상이었습니다. 앙굴리말라 자신도 이처럼 짐승같은 생활이 죽도록 싫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워 스승과의 약속을 지킨 다음, 자유로운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명 때문에 인근에 인적이 끊어져서 마지막 한 개의 손가락을 얻기가 어렵게 되자, 앙굴리말라는 몹시 다급해졌습니다.
‘만약 내 앞에 어머니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머니를 죽여서라도 기어코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우고 말겠다.’
그날 아침 붓다께서는 평소와 같이 명상에 드셔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다가 앙굴리말라의 일을 아시게 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가 사악한 스승에게 속아 그의 어머니마저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불쌍한 앙굴리말라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나서서 앙굴리말라와 그의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어야겠다.’
붓다께서는 발우를 들고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를 뒤쫓아 깊은 숲속으로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붓다께서 숲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붓다를 말렸습니다.
“스님!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스님! 그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저 숲속에는 앙굴리말라라는 무서운 살인자가 있어요. 흉악한 앙굴리말라는 아마 스님까지 죽이고 말 거예요.
그는 세상 어느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도 존경하지 않아요.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앙굴리말라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고, 우리들도 오늘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마 그 무서운 살인자가 오늘은 이 마을까지 달려올 거예요. 스님! 어서 이 마을을 떠나세요.”
마을 사람들은 처음 뵙는 수행자가 그 살인자에게 화를 당할까 봐 세 번이나 만류를 했지만, 붓다께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숲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한편 숲속에 숨어 있던 앙굴리말라는 그의 어머니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어리석고 불쌍한 여인이 오고 있구나. 나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저 불쌍한 어머니마저 죽일 수밖에 없구나!”
제정신을 잃은 앙굴리말라는 자기 어머니마저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우려고 칼을 빼들고 어머니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 위급한 순간에 붓다께서는 갑자기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셔서 앙굴리말라와 그의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으셨습니다. 붓다께서 갑자기 앞에 나타나시자 앙굴리말라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 하늘이 나를 도우시는구나. 이제 우리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도 천 개의 손가락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앙굴리말라는 칼을 휘두르며 붓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서서 명상에 드셨습니다.
‘아마, 앙굴리말라의 눈에는 내가 뛰어 도망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혼신의 힘을 다해 붓다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숨이 턱에 차고, 온몸이 땀에 젖고, 뼈마디가 욱신거릴 정도로 달렸으나 어찌된 일인지 붓다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앙굴리말라는 탄식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코끼리보다도 말보다도 사슴보다도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짐승들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었고, 그래도 한 번도 피로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다. 내가 어째서 저 수행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단 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앙굴리말라가 붓다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거기 서! 거기 꼼짝 말고 멈추어 서 있으란 말이다!”
“앙굴리말라야!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서 있다. 멈추지 못한 것은 바로 너이지 않느냐?”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를 향해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도무지 붓다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수행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 수행자는 그렇게 빨리 달렸으면서도 자기는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을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평소와 달리 지금 몹시 피곤하다. 아마 저 수행자의 말속에는 무언가 감춰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앙굴리말라가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수행자께서는 그 자리에 그냥 서 계셨다고 하는데, 나는 왜 당신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단 말입니까?”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앙굴리말라야!
나는 악행을 멈추어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항상 자비롭다.
그러난 너는 악행을 멈추지 못해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몹시 잔인하구나.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지만 너는 멈추지 못하였느니라.”
붓다의 말씀을 듣고 나자, 앙굴리말라의 마음속에 갑자기 환희심이 솟구쳤습니다.
앙굴리말라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던져버리고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붓다께서는 어리석음으로 무서운 살인죄를 범한 앙굴리말라에게 자비의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와 그의 어머니를 사원으로 데려가서 앙굴리말라에게 비구계를 주셨습니다.
그같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게 된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도 흉악한 살인자인 자신의 아들을 순식간에 훌륭한 수행자로 만들어주신 붓다 앞에 엎드려 깊은 감사를 올렸습니다.
한편 흉악한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잡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왕은, 붓다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오백 명의 군사들과 오백 마리의 말들을 앞세워 붓다께서 머무시는 사원으로 찾아왔습니다.
붓다께서는 왕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계시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하시며 왕에게 물으셨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슨 일이요? 왜 이렇게 군사들을 일으키셨소? 빔비사라 왕이 싸움이라도 걸어온 것이오? 아니면 릿차위 태자나 다른 왕족들이 분란이라도 일으켰단 말이오?”
“아닙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제 왕국 안에 요즘 앙굴리말라라는 흉포한 산적이 나타나서 무고한 백성들을 수없이 다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으러 이렇게 나섰으니 저와 제 군사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아! 그렇습니까?
그러나 대왕이시여!
대왕이 만일 이 자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머리를 깎고 황색가사로 갈아입어 비구로 다시 태어난 앙굴리말라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왕은 지체 없이 대답했습니다.
“거룩한 붓다시여! 저는 무릎을 꿇어 그 비구에게 예를 올리겠나이다.”
그제서야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 비구를 부르셨습니다. 그 무서운 앙굴리말라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왕은 약속대로 그에게 예를 올렸으나, 군사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도망을 쳤습니다.
붓다께서는 도망치는 군사들을 모두 불러 앙굴리말라 비구 앞에 앉힌 다음 그들을 위해 설법을 해주셨습니다.
-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은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것> 中, 도성(뿐냐산또) 큰스님, 삼각형 프레스,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