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요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2-06-02
조회수 85

   1. 있는 그대로의 <자기존중>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예외없이 온갖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한 고비 넘기고 나면 또 한 고비가 나타나고, 거센 파도는 왜 그토록 겁겹이 밀려오는지. 지금까지 우리는 그 숱한 난관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왔고, 때론 아득한 절벽 앞에서 의기소침해 하거나 좌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장애물 앞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할까요? 또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목적지를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극복과 좌절은 <자기존중감>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자기존중감>이란 자신이 스스로 존중받을 만한 소중한 존재이며,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내재된 의식상태입니다. 


<자기존중감>이 높으면 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부딛혀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늘 자신감으로 충만되어 있으며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나 능동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러나 <자기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며, 장애물을 만나면 우회하거나 회피하려고 합니다. 매사에 피동적이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의기소침해 합니다. 


<자기존중감>은 <자기존재감>이나 <자기정체성>과는 구별되는 의식상태이며, 특히 <자존심>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위키 백과]를 검색해보면 "<자기존중감>과 <자존심>은 모두 자신에 대한 긍정적 심리상태이긴 하지만, <자기존중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대한 긍정인 반면, <자존심>은 상대적 비교경쟁에 있어서의 자신에 대한 주관적 긍정을 의미" 합니다.


'상대적 자기긍정' 으로서의 <자존심>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대한 긍정' 즉 <자기존중감>을 기반으로 한 고난극복의 사례들을 우리는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위인들을 통해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인류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 속에서 진화ㆍ발전하였습니다. 어떠한 민족이든 환경에 적응하거나 극복해내면 번성했고, 그렇지 못하면 쇠퇴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고난' 혹은 '고난극복'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상의 고뇌'  '인생역경'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고통과 그 고통의 근원적 해결에 대한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 문제는 이번 한 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고 있는 심대한 문제입니다. 


이와같은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500년 전 까삘라국의 왕세자 고따마 싯닫타는 화려한 왕궁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결행하였습니다. 태자는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써 하나뿐인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이러한 확신이야말로 <자기존중>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따마 싯닫타 태자는 거센 파도 겹겹이 밀려오는 생사고해에서 난파되지 않고, 조난 당하지 않고 무사히 저 피안의 언덕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체중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시었습니다. 마지막 탄생을 알리는 첫번째 선언에서 ~ 대열반의 마지막 선언까지.


2. 마지막 탄생 (그 첫번째 선언)


빨리어 경전 5부 니까야 가운데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굿따까 니까야]의 <마하붓다왐사>에는 고따마 싯닫타 태자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Aggo hamasami lokassa,

(악고- 하마사미 로-깟사)

Jețțo hamasami lokassa,

(옛또- 하마사미 로-깟사)

Sețțo hamasami lokassa,

(셋또- 하마사미 로-깟사)

Ayamantimā jāti, 

(아야만띠마- 자-띠)

Natthidāni punabbhavo.

(낫티다-니 뿌납바오-)


"나는 삼계중생 가운데 으뜸가는 존재다.

그 어떤 존재도 내게 견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존재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며, 

이제 내게 다음 생은 없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위대한 외침입니까? 이 얼마나 자기존중감 넘쳐나는 확신에 찬 선언입니까? 여기서 '내가 가장 뛰어나다’라는 것을 아만이나 자만의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천신이나 범천도 가히 막을 수 없고 굴리게 할 수도 없는 거룩한 법륜을 자신이 굴릴 것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


또한 4아승기와 10만 대겁 동안 십바라밀을 3가지 단계와 4가지의 실천으로 완벽하게 구족했기 때문에 자신보다 공덕이 더 뛰어난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태어나자마자 당당하게 외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라는 말은 이번 생에 필경 모든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이 됨과 동시에 정등각자가 되어 대열반에 들면 그 어떤 존재로도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3. 성도 (그 두번째 선언)


고따마 싯닫타 태자, 그의 나이 29세, 안락한 왕궁생활을 버리고 생사없는 진리를 찾아 헤매인 지 어느덧 6년, 최상의 선정수행과 온갖 고행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라는 양극단의 삶ㆍ수행방식을 버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중도(팔정도)수행을 통해 정신과 물질에 의해 조건 지어진 10가지의 결박을 모두 끊고 <탐욕의 절멸> <성냄의 괴멸> <어리석음의 완전소멸>이라는 구경의 해탈ㆍ열반을 실현하였습니다. 


중생들이 나고 죽는 윤회의 법칙(12연기법)을 일어나는 순서와 사라지는 순서대로 관찰한 다음, 4가지 성스로운 진리(사성제)를 3가지 양상과 12가지 측면으로 완벽하게 깨달아 위없는 정등각자가 되었습니다. 


위없는 깨달음, 구경의 해탈ㆍ열반을 실현함으로서 고따마 싯닫타 태자는 일체중생들의 영원한 숙제였던 나고 죽는 문제로부터 누구라도 온전하게 해방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아래의 게송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뒤 그 해탈의 감회를 읊으신 것입니다.


“오랜 세월 생사윤회 속에서

얼마나 힘든 삶 살아왔던가.

이 몸 만드는 목수를 찾아

셀 수 없는 생 윤회하며 고통 받았네.

집 짓는 자여! 나 이제 그댈 보았노라.

그대 더 이상 집짓지 못하리!

이제 모든 서까래 내려앉고

대들보 부러졌으며

마음은 이미 닙바나에 이르러

감각적 욕망 모두 끊어졌노라.”


“생사(生死)의 고된 여행은 끝났다.

슬픔과 오온의 현상으로부터 해탈하여

모든 얽매임을 다 파괴해버린 여래에게

이제 더 이상의 괴로움은 없다.


 4. 성도 이후 (그 세번째 선언)


이 세상에 완전한 것, 고정불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안정은 이 세상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불안정한 것으로 불안정한 것에 촛점을 맞추려 하니 그 얼마나 불안정하겠습니까? 그래서 고따마 붓다 이전 까지는 그 누구도 자기가 본 것이 최상의 진리요,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따마 붓다께서는 정각을 이루신 뒤, "나는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었노라" 선언하셨고, "도로서는 <팔정도>가 최상의 도요, 진리로서는 <사성제>가 가장 성스러우며, <닙바나>야 말로 궁극의 행복"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뒤 다섯 수행자들을 위해 바라나시 사슴동산으로 가시는 도중 외도 수행자 우빠까를 만나게 되는데 우빠까가 고따마 붓다께 다가가서 다음과 같이 말을 걸었습니다.


"벗이여, 그대의 안색은 

맑고 깨끗하며 광채가 납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러자 고따마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겨냈고,

마침내 모든 것을 알았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갈애를 소멸하였고, 해탈에 이르렀네.

스스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나는 세상의 아라한, 나는 최상의 스승.

스스로 깨달음을 이룬 유일한 자이며

적멸에 이르러 닙바나를 성취했네."

우빠까여, 나는 이제 진정한 승리자이네."


4. 전도 (그 네번째 선언)


바라나시 사슴동산에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 수행자들로 하여금 법의 눈을 뜨게 하신 고따마 붓다께서는 바라나시 대부호의 아들 야사라는 청년을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뒤이어 그의 친구들 54명까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여 모두들 아라한 성자가 되었고, 마침내 다음과 같은 전법선언을 하시게 됩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천상과 인간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노라.

그대들 역시 천상과 인간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노라.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일체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일체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대한 자애와 연민심으로

모든 천상과 모든 인간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라.


비구들이여,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뛰어나고

의미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드러내 보여라.


번뇌의 때가 적은 이들이 있으니

만일 이들이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쇠퇴할 것이다.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깨달은

천신과 인간들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나도 설법을 위해 우루웰라로 가리라."


 5. 전도 이후 (그 다섯번째 선언)


"젊은 수행자라고 가벼게 여기지 말라."


[상윳따 니까야]의 <젊은이 경>(Dahara-sutta)에는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재가신자 중의 한 사람인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이 고따마 부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설마 저토록 젊은 사문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붓다이시겠는가?" 하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부처님과 조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왕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이르길

 ‘그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다.’

하는 것은 바로 나를 일컫는 말입니다.

대왕이여,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 바라문은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현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성자로 인정되는 사문 바라문입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니간타 나따뿟따,

산자야 벨랏티뿟따, 빠꾸다 깟사야나, 

아지따 께사깜발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당신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은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다' 

천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이도 아직 젊고 출가한 지도 얼마 

안 된 신참에 불과한 고따마 존자께서 

어찌 그렇게 당당하게 천명하십니까?”


“대왕이여, 젊다고(어리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결코

아니 되는 4가지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끄샤뜨리야(왕족)는 젊다고(어리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태생이 분명한 끄샤뜨리아 왕자는

그 누구라도 언젠가는 권좌에 올라

왕국을 통치할 수 있습니다.


독사뱀이 어리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독사뱀은 맹독을 가지고 있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여

단박에 물어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씨가 작다고 (불이 갓 일어났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만일 태울 것을 만나면 

금새 크나큰 불로 변하여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 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구가 젊다고(어리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제 아무리 맹렬한 불이 숲을 태워 없애고

검은 흔적 폐허만을 자취로 남기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는 다시

새싹들이 돋아납니다. 그렇지만 

계를 구족한 젊은 비구가 있어서

계행의 불꽃으로 어떤 사람을 태운다면

그에게는 아들들도 가축들도 멸망하며

그의 상속자들 역시 재물얻지 못하리니

후손도 끊어지고 상속자도 없어져서

야자수 등걸처럼 텅 비어 버리게 됩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이로움을 바라는 현명한 사람은

이러한 4가지에 대해 젊다고

(어리다고, 작다고, 보잘것 없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6. 대열반 (그 마지막 선언)


이 세상 대부분의 종교가 전지자(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통해서 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타력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교조이신 고따마 붓다께서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붓다께서 깨달은 진리(담마)를 내 안에서 몸소 실천수행 함으로써 궁극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위대하신 스승 고따마 붓다께서는 성도 후 45년 동안 일체중생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입멸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생사해탈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대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여래(부처님)를 섬으로 삼지 말아라.

    법을 섬(피난처)으로 삼고,

    너희 스스로를 섬으로 삼아라"


  "여래는 다만 길을 보여줄 뿐이다.

   너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라.

   누구라도 담마를 실천수행하면

   마침내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리라"


그렇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이처럼 "누구라도 담마를 실천수행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생사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노라" 단언하셨습니다. 담마(법, 진리, 진리에  이르는 길)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께서 직접 체험하시고 보증하신 것입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깨달으신 그 담마는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으며, 추론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지  않습니다. 실제적이고 너무나도 분명한 것이어서 누구나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수행하면 수행한 만큼의 결과가 곧바로 나타납니다. 


위대하신 스승의 마지막 당부 말씀처럼, 여래를 의지처로 삼지 말고, 여래께서 직접 체험하고 가르치신 담마를 의지처로 삼아 실천수행해 나가십시오. 서원 굳게 세우시고 스스로를 한번 온전히 믿어 보십시오. 나를 악도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자도 나 자신이지만, 자기를 구원할 자 역시 자기 자신 뿐입니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실천수행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7. 마무리 법문


타인이 나를 업신여기면 

적이 되고 잠 못 이루면서도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화 시켜놓고는

도무지 아쉬워하질 않는구나.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교만을 키우는 일이 아니요,

스스로를 귀하게 여김은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함입니다.


인간 몸 받았을 때 정진하지 아니하면

어느 천년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청정범행 닦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공덕이 없어 수행을 못한다고

이런 구실 저런 핑계를 대는구나.


모든 천상과 인류의 위대한 스승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붓다께서도

그 옛날엔 오랜생 윤회하는 지친 나그네,

갈망으로 잠못 이루는 우리같은 범부셨네.


누구라도 스스로를 존중하며

지극정성 끊임없이 정진하면 

평등의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를 존중하며

지극정성 끊임없이 정진하면

참으로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고의 평안 닙바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얕보지 마십시오.

궁극의 해탈ㆍ열반에 이를 때까지

무한한 인내로써 부지런히 정진합시다.


                *


- 불멸 2565(6). 5. 28

- 천림산 기슭에서 

- 메따와 함께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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