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 와 '위빨라사'에 대하여》/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2-01-09
조회수 590

"겨울 혹한 제아무리 매워도 

  얼음장 밑에선 강물 흐르네.

  겨울강 쉼없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필경 바다가 되리."


한해가 가고 나니 또 한해가 시작됩니다. 신년사를 발표하였더니 많은 분들이 격려와 공감의 마음을 표해 주셨습니다. 어느덧 한 주가 다 되어가는데 새로운 법문이 올라오지 않아 내심 '불자들께서 기다리고 있구나!'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법문 하나를 엮어 올립니다.


'위빳사나(Vipassana)'와 '위빨라사(Vipallasa)'는 서로 상대적 개념을 지닌 불교용어입니다. '위빨라사(Vipallasa)'는 '환각, 착각, 가상, 전도(뒤집힘)'의 뜻을 지닌 명사로서, 그 의미를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 '인식의 오류, 마음의 장난' 정도로 옮겨 보았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위빳사나(Vipassana)'는 '분리, 다름, 관통'의 의미를 지닌 'Vi' 와 '보다, 발견하다, 이해하다'란 뜻의 동사 'Passana'가 더해진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본다'는 것은 '환각ㆍ착각ㆍ가상ㆍ전도' 되기 이전, 즉 <위빨라사 현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한다는 뜻입니다. 


'초기불교수행=위빳사나' 라고 할 정도로 위빳사나 수행이 초기불교수행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행자들이 삼매체험과 무상ㆍ고ㆍ무아ㆍ해탈ㆍ열반에 대한 목표지향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반면, 윤회(고통)의 원인이 되는 전도된 인식에 대한 집착현상 등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인 '인식의 오류'를 극명하게 드러낸 속담입니다. 솥뚜껑은 단지 솥뚜껑일 뿐인데, 솥뚜컹의 손잡이를 보는 순간 그 손잡이를 자라의 머리로 인식한 것입니다. 이것은 환각입니다.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솥뚜껑과 자라는 시간적ㆍ공간적으로 아무런 개연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라를 단 한번이라도 보았던 사람은 가마솥의 솥투껑 손잡이에서 자라를 연상해 냅니다. 연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놀라서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스스로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위빨라사 현상>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현상이 특별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 전 생애에 걸쳐 누구에게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장이 좀 심한 것 같나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와같은 '인식의 오류'는 중생계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대상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위빳사나'라고 하지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위빳사나 지혜'라고 합니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순간적입니다. 찰라지간이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대상이 거울에 비춰지는 순간, 거울에 때가 끼이는 것처럼 잠재돼 있던 고정관념ㆍ선입견ㆍ통념ㆍ인습 등이 찰라지간 대상을 왜곡시켜 버립니다. 잘못된,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합니다.


안개를 연기로 오인하거나, 썩은 칡넝쿨을 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작년 봄이던가, 동네 할머니 한분이 마당귀에서 마른 낙엽을 태우다가 불씨가 날리는 바람에 암자가 인접한 뒷산을 온통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론 안개가 조금만 끼어도 안개와 연기를 구분하기 위해 냄새를 맡게 되었고,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혹시 소방차가 아닌가 하고 주의를 더욱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절대적ㆍ상대적' 이란 말이 있습니다. 절대적 관점으로 보면, 날씨가 덥다 춥다 혹은 전등빛이 밝다 어둡다 또는 싱크대의 수압이 약하다 강하다 라고 하는 분별심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관점에서 보면, 작은 것에 비해 큰것은 분명히 커보이고, 큰것에 비해 작은 것은 확실히 작아 보입니다. 이처럼 모든 대상이 극명하게 차별인식됩니다.


이곳 산중에서는 식수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대형 저수통에 물을 모아놓고 쓰는데, 싱크대물의 수압이 일반가정의 1/4정도 됩니다. 이 승은 단 한번도 불편함을 느낀적이 없는데, 일반인들은 매우 불편한가 봅니다. 설겆이하던 불자님들이 수도꼭지에 대고 푸념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절대불변의 가치란 이 중생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건을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는 게 중생계의 가치관입니다. 그것은 <위빨라사 현상> 때문입니다. 착각하고, 환각하면서 <위빨라사 안경>을 낀 채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을 두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결국 헤어지고 말 것을 영원한 내것이라 움켜쥔 채 살아갑니다. 


이 우주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나는 명칭ㆍ인습ㆍ관습ㆍ선입견ㆍ고정관념ㆍ착시ㆍ착각에 의해 형성된 가상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명칭ㆍ개념화되기 이전, 즉 <위빨라사 현상> 이전의 본래세계ㆍ절대세계ㆍ실재세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세상은 이름을 빌려서 가상으로 존재하는 가상세계입니다. 선입견ㆍ고정관념ㆍ착시ㆍ착각에 의해 존재하는 <위빨라사의 현상세계>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왜곡되거나 개념화되기 이전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수행이며, '있는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는' 수행입니다.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함으로서 마침내 진리의 참성품인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해내는 수행입니다.


뿐만 아니라 위빳사나 수행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왜곡된 사실 그대로를 더 이상의 왜곡없이 바라보는 수행입니다. 또한 왜곡되어지는 과정과 개념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들여다보는 수행입니다. 왜곡된 현상에 대한 찰거머리같은 집착과 어리석음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는 수행입니다.


서두에 <위빨라사>에 대해서 [인식의 오류ㆍ마음의 장난]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마음(인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인식의 오류'가 단일대상에 대하여 한 차례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인식의 오류는 단층이 아닌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빨라사 현상>의 완전한 극복은 다음과 같이 5단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다음의 '5단계론'은 <위빨라사 현상>을 극복하면서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통찰지의 성숙과정을 단계별로 나타낸 것입니다. 수행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누구라도 체험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편의상 구분해 본 것이니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1. 뱀의 단계 

몸의 현상과 마음의 현상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을 뭉퉁그려서 하나로 봄. 무상한 모든 것을 항상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오취온이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함. 언제 어디서나 명칭ㆍ인습ㆍ선입견ㆍ고정관념에 구속됨. 전형적인 <위빨라사 단계>임.


2. 썩은 칡넝쿨 단계

물리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음.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 라고 하는 인과의 법칙을 분명하게 이해함. 명칭ㆍ인습ㆍ고정관념ㆍ선입견을 거치지 않고 사물의 고유한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


3. 새끼줄 단계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보기 시작함. 매 행위 때마다 시작과 중간과 끝을 봄. 걸음을 걸을 때 발의 들고 가고 놓고 닿고 누름의 감각이 명료하게 알아차림 됨. 간혹 대상과 대상을 아는 의식이 동시에 사라지기도 함.


4. 섬유줄 단계

몸과 마음의 일체 현상이 무상한 것으로 인식됨. 모든 것이 빠르게 일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짐. 때에 따라서는 그것들의 연속적 소멸만 인지됨. 무상ㆍ고ㆍ무아라고 하는 진리의 보편적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남.


5. 실체가 사라진 단계 

그 어떤 생멸현상에 대해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음. 무상ㆍ고ㆍ무아의 진리를 다시 한번 철견하고, 사성제를 증득함. 조건지어진 모든 물리적ㆍ정신적 결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함. 드디어 몸에 대한 인식이 소멸하고, 소멸을 인지하고 있던 마음도 사라지고, 마침내 일체의 마음기능이 일시정지하면서 적멸의 상태에 이름. 


<위빨라사>는 '인식의 오류' 현상인 동시에, 도깨비같은 '마음의 장난'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중생들은 끊임없는 윤회를 반복하면서 괴로움을 겪습니다. <위빳사나>가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라면, <위빨라사>는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빨라사 현상>에 속지 않고, <위빨라사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장애물은 오히려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안개를 연기로 오인하기도 하고, 썩은 칡넝쿨을 뱀으로 착각해 놀라기도 합니다. 칡넝쿨은 칡넝쿨일 뿐이고 안개는 안개일 뿐인데, 우리는 지금 그 어느 착각의 수렁에 빠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불멸 2566년 1월 7일

천림산 기슭에서 

자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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