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19 20:48
글쓴이 : 소오강호
조회 : 11,579
절대적 소멸 주장에 침묵으로 대처하다 2011.05.24 10:10 입력 발행호수 : 1097 호 / 발행일 : 2011년 5월 25일
단멸론(斷滅論)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하여 없어진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문제시하는 단멸론은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고서 업에 의한 지음과 받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붓다는 죽고 난 이후의 삶 혹은 내세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착한 행위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에 태어난다고 가르쳤다. 어떠한 경우라도 죽고 나면 그대로 소멸하여 없어지고 만다는 방식의 가르침을 펼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불교가 무아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단멸론과 흡사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무아란 말 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아 해석은 고착화된 자아(Ātman) 관념을 극복하는 데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상쇄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순간의 ‘나’가 정말로 이 순간에 그친다면 과연 누가 내일의 ‘나’를 위해 고민하겠는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는가.
붓다는 현상계를 넘어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라든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그러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 혹은 영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인격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는 기꺼이 인정하였고, 사후의 세계에도 그것은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자니사경’에 나타나듯이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들려준다.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하는 한 붓다는 내세와 윤회를 인정하였다. 윤회를 멈춘 사후의 아라한에 대해서도 생각과 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단절되어 소멸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 붓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한 성스러운 침묵(無記)으로 대처했다. 우리는 경험 영역을 살아가는 까닭에 경험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생각들은 불필요한 논쟁의 빌미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멸론자는 절대적인 소멸을 주장한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정반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타당성도 지닐 수 없다. 경험을 벗어난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영원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멸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삿된 견해(邪見)로 간주한다.
단멸론은 육신만을 절대시하고서 육신의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본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서구적 영혼 관념에 거부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조장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또한 도덕의 부정과 쾌락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의 물질문명에는 이와 같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요소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단멸론적 사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갖춘 사람은 사물의 계속됨을 보면서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사라짐을 보면서 영원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있음과 없음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이른다.
▲임승택 교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극단적이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극단적이다. 여래는 이러한 두 가지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
붓다는 우리에게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출처] 임승택 교수의 초기불교순례 17. 단멸론과 불교 |작성자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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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14-09-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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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부처님의 제자라면, 범부의 견해보다는 당연히 부처님의 법과 율이 우선이기에,
어떤 가르침이 있다면,삼장에서 그 근거를 찾아서 공부해가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법우님이 소개해주신 말씀은, 부처님의 유명한 가르침으로서,「깟짜야나 고따 숫따」(Kaccaayanagotta Sutta, S12:15)에 나오므로, 이 경전을 일독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항시 행복하시길, 모든 괴로움 없으시길 _()_ _()_ _()_
작성일 : 14-06-19 20:48
글쓴이 : 소오강호
조회 : 11,579
절대적 소멸 주장에 침묵으로 대처하다 2011.05.24 10:10 입력 발행호수 : 1097 호 / 발행일 : 2011년 5월 25일
단멸론(斷滅論)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하여 없어진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문제시하는 단멸론은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고서 업에 의한 지음과 받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붓다는 죽고 난 이후의 삶 혹은 내세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착한 행위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에 태어난다고 가르쳤다. 어떠한 경우라도 죽고 나면 그대로 소멸하여 없어지고 만다는 방식의 가르침을 펼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불교가 무아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단멸론과 흡사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무아란 말 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아 해석은 고착화된 자아(Ātman) 관념을 극복하는 데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상쇄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순간의 ‘나’가 정말로 이 순간에 그친다면 과연 누가 내일의 ‘나’를 위해 고민하겠는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는가.
붓다는 현상계를 넘어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라든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그러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 혹은 영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인격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는 기꺼이 인정하였고, 사후의 세계에도 그것은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자니사경’에 나타나듯이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들려준다.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하는 한 붓다는 내세와 윤회를 인정하였다. 윤회를 멈춘 사후의 아라한에 대해서도 생각과 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단절되어 소멸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 붓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한 성스러운 침묵(無記)으로 대처했다. 우리는 경험 영역을 살아가는 까닭에 경험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생각들은 불필요한 논쟁의 빌미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멸론자는 절대적인 소멸을 주장한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정반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타당성도 지닐 수 없다. 경험을 벗어난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영원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멸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삿된 견해(邪見)로 간주한다.
단멸론은 육신만을 절대시하고서 육신의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본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서구적 영혼 관념에 거부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조장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또한 도덕의 부정과 쾌락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의 물질문명에는 이와 같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요소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단멸론적 사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갖춘 사람은 사물의 계속됨을 보면서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사라짐을 보면서 영원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있음과 없음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이른다.
▲임승택 교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극단적이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극단적이다. 여래는 이러한 두 가지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
붓다는 우리에게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출처] 임승택 교수의 초기불교순례 17. 단멸론과 불교 |작성자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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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14-09-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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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부처님의 제자라면, 범부의 견해보다는 당연히 부처님의 법과 율이 우선이기에,
어떤 가르침이 있다면,삼장에서 그 근거를 찾아서 공부해가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법우님이 소개해주신 말씀은, 부처님의 유명한 가르침으로서,「깟짜야나 고따 숫따」(Kaccaayanagotta Sutta, S12:15)에 나오므로, 이 경전을 일독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항시 행복하시길, 모든 괴로움 없으시길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