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10)

관리자
2021-04-24
조회수 532

게시자 Co-Admin Mahānāma

Mahānāma Pariyatti, patipatti, pativedha

Mar 10, 2021, 12:00 AM 

한국테라와다불교《빤냐완따》이사장 스님의 수요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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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

《10》

‘마음’은 <걷는수행>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Ⅰ)


<걷는수행>을 통해 마음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각인식(想)’ ‘정신적인 의도(行)’를 어떻게 생생하게 볼 수 있었는지 미얀마 수행처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미얀마 수도원의 수행일과는 주로 명상홀에서 <좌선>1시간 <걷는수행>(행선,경행) 1시간씩을 거의 하루종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앉는 수행에 익숙해 있었던 이 승으로서는 난생 처음 접하는 1시간의 <걷는수행>이 낮선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홀로 표류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1시간 동안 500회 이상 반복되는 그 단순한 발의 ‘들고 가고 놓음’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것인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지루하고 힘들고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좌선>1시간 <걷는수행>1시간씩을 거의 하루종일 반복하고 나서 이튼 날 사야도께 수행보고를 할 때마다 그나마 좌선에 대해서는 보고할 것이 많은데, <걷는수행>에 대해서는 별로 보고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4대나 오온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었으며, 좌선은 그나마 편안한데 안하던 <걷는수행>을 인위적으로 하려다 보니 차분해지기는커녕 조급증만 더 커져갔습니다. 아열대의 열기 속에 팔다리는 붓고 허리와 우측 등뼈마저 아파오는 가운데 도무지 <걷는수행>의 실체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름쯤 지났을까? 자고 일어나보니 붓기가 빠져 있었고, 허리와 우측 등뼈의 통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들뜬 마음은 어느샌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고,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이면 발을 들고 가고 놓을 때의 감각들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그 감각들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실제 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발의 ‘들고 가고 놓음’의 감각들이 생생히 알아차려지고, 가끔 망상이 생겨날 때도 마음속으로 ‘망상’ 하고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즉시 그 망상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발을 들 때 들려는 마음이 있고, 돌 때는 돌려는 마음이 있다는데 ‘의도(行)’라고 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발을 들려는 마음, 몸을 돌려는 그 마음은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걸음걸이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여 보아도, 혹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의 깊게 걸어보아도 ‘그 마음’은 보일 기미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문득, 부처님의 입멸 직후 마하깟사빠 존자가 주도하는 제1차 경전결집에 참여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걷는수행>만 했다던 아난다 존자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걷는수행>을 일념으로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마음’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규정된 하루의 수행일과가 끝나고 모두 취침에 들고 나면, 뜰에 홀로 나와 발의 동작에 주의집중 하면서 밤새도록 걷고 또 걸었습니다.

5일째 되던 날 밤이었습니다. 아름드리 망고나무에서 덜 익은 망고가 땅바닥에 ‘툭’하고 떨어지는 순간, ‘피곤하다’ ‘들어가서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습니다. 발걸음이 숙소 앞 계단(3~4계단) 밑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마치 두더지가 일순 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사라진 것처럼, 눈앞에(혹은 가슴 중심 쯤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순간, 동작이 멈춰 졌습니다. 계단 앞에 선 채로 몸 전체를 주시했습니다. 일순, 두더지가 다시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마침내 발걸음이 계단 위로 옮겨지기 시작했고, 세 계단 쯤 오른 다음 현관문 앞에서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놀라운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어두운 굴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더지 한 마리가 달빛 환한 굴 밖으로 불쑥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아, 이것이 마음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음을, 그토록 애를 써도 볼 수 없었던 마음을, 보려는 의지를 놓아버리고 들어가서 쉬려는 순간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흥분이 가라앉고 1시간 반가량 숙면을 취하고 깨어났는데, 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깨어나는 순간부터 알아차림이 저절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려는 의도, 눈거풀이 위로 올라가는 감각, 흐린 불빛 속의 사물들에 대한 인식, 팔을 움직여 담요를 접어놓고 세수를 하는 동안에도,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명상홀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알아차림 의식이 저절로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걷는 수행>은 <좌선수행>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좌선> 1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닌지라 평소 집중이 잘 안될 때는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두더지 체험 이후부터는 집중이 워낙 잘되다 보니 호흡 몇 번 알아차림하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망상 혹은 사념이 생겨날 때도 알아차리는 즉시 사라졌고, 간혹 그 심리를 들여다보면 왜 그런 사념이 생겨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사념 너머 심층 심리 속에 미세한 마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영 잊은 줄만 알았던 그 어느 젊은 날의 마음의 파편, 잠 못 이루며 애타게 찾아 헤매이던 마음, 차마 놓지 못하고 움켜쥔 채 괴로워하고 있는 마음들이 마치 의식의 현미경 속에서 아메바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년의 상처들이 아직도 다 치유되지 않은 채 미세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불멸 2565(2021). 3.10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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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존상(불상) 이야기·Ⅰ
<세계 편>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시자 불자들은 부처님의 위대한 행적을 기억하고자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분배해 사리탑을 조성하거나 인도 붓다가야에 있는 해탈보리수의 묘목을 이식하여 예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실 때 좌정에 드셨던 자리(금강보좌), 깨달음을 이루신 뒤 <걷는수행>(경행)하셨던 경행대(짱까마나), 그리고 불족적(부처님의 발자국)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성소(聖所)에 예배·공양 올림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그 위대한 가르침을 기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입멸 후 약 500년간은 불사리탑, 보리수, 불족적 등이 부처님(고따마 붓다)의 존상을 대신해 오다가 부처님 입멸 후 약 500년경인 기원 전후 무렵 드디어 불상(佛像) 즉 부처님의 존상이 조성되기 시작하는데, 부처님 입멸 후 수세기 동안은 부처님 존상을 직접 조성하는 것이 위대한 스승에 대한 무례라 생각했을 것이며, 차츰 교단이 전역 구석구석까지 확장되면서 그리움이나 기억의 차원을 넘어 대상에 대한 가시적이고도 실제적인 요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예배의 대상 혹은 신앙의 한 형태로서 ‘부처님 존상’(佛像)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됩니다.

최초의 부처님 존상 조성은 인도의 북서부 간다라(당시 지명 딱실라) 지역과 중북부 마투라(수도 델리의 남쪽) 두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조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불교미술사』(김영극, 솔 출판사)에 보면 마투라는 오래 전부터 종교도시로 알려져 있었으며, 델리(현 인도의 수도)의 남쪽 갠지스강의 지류인 야무나강 중간 서안(西岸)에 위치하여 인도 서북부 및 서해안을 연결하는 대륙간 교통의 요지로서 중개무역의 거점이었다고 합니다.

간다라는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접경 지역으로서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와 함께 인도 대륙을 관통하는 동서교통의 간선로에 인접한 곳입니다. 그 곳은 예로부터 이민족의 침임을 자주 받았으며 동서문화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중요한 지역입니다. 알랙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BC 326년)과 한무제의 대흉노정벌(BC 104년)로 인도인들은 인도와 인도 주변국 이외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도는 기존 인도 위주의 좁은 세계관에서 벗어나 한층 더 확장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韓國의 美』金元龍 외, 季刊美術)

마투라의 불교조각상들이 인도 고유의 조형성과 소박한 고대 인도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반면에 간다라의 불교조각상은 그리스 신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투라 지역의 부처님 존상을 자세히 보면 인도인의 모습과 함께 가사의 주름이 거의 없거나 가사가 불신(佛身)에 밀착되어 있는 반면에 간다라 지역의 부처님 존상은 다소 서구적인 각진 형상과 함께 가사의 주름을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해 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간다라 지역과 마투라 지역 어느 곳에서 먼저 부처님 존상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 다소 논란은 있으나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문화의 성격이 전혀 다른 인도 북서부의 간다라와 인도 중북부의 마투라 두 지역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서로 다른 미술 양식이 서로 무관한 상태에서 각각 독자적인 양식의 부처님 존상이 출현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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