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8)

관리자
2021-04-24
조회수 463

게시자 Co-Admin Mahānāma

Mahānāma Pariyatti, patipatti, pativedha

Mar 5, 2021, 12:00 AM

한국테라와다불교《빤냐완따》이사장 스님의 금요법문 

Feb 26, 2021, 9:1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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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

《8》

<걷는수행>에서의 관찰대상은 무엇인가?
통찰의 지혜는 어떻게 성숙되어 가는가?

<걷는수행>은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하셨던 수행양식입니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뒤에도 보리수 옆에 있는 경행처(Caṅkamana)에서 1주일간을 집중적으로 <경행>하셨고, 그로부터 대열반에 이르실 때까지 밤낮으로 <걷는수행>(경행)을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또한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서 <걷는수행>을 하였는데, 아라한 성자가 된 이후에도 그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걸으면서 무엇을 하였으며, <걸음>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아난다 존자께서는 밤새도록 경행처를 거닐면서 무엇을 했으며, 피로를 느낀 존자께서 자세를 바꾸어 누우려는 순간에 깨달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경전상에 <걷는수행>의 방법이나 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초기 경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온·오취온(五蘊·五取蘊)에 대한 관찰과 이해입니다. 오온에 대한 관찰을 통해 오온의 특성인 무상·고·무아를 깨달아 해탈열반에 이르는 것이 공식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오온’이 무엇입니까? 사람(나)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의 5가지 구성요소 아닙니까? 즉, 물질(몸)·느낌·표상인식·의도·의식(마음) 즉, ‘몸·마음’ 아닌가요? 이 5가지 구성요소에 집착돼 있는 것을 ‘나’ 혹은 ‘너’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온(오취온)을 떠나서는 결코 ‘나’ ‘너’ ‘세상’ ‘우주’의 실체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따마 붓다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오온의 실체를 완벽하게 깨달아 설해 놓으셨습니다.

호흡이 24시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는 것처럼, 오온(오취온) 역시 앉아있을 때나 서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온(오취온)은 가장 직접적인 수행주제입니다. 오온(오취온)의 작용은 특히 안정적인 걸음 속에서 잘 관찰됩니다. ‘부처님께서 연기(緣起)의 법칙을 일어나는 데로, 소멸하는 데로 관하셨다’는 것은 바로 ‘오온의 생성과 소멸’ ‘오온의 윤회’를 통찰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오온의 생멸윤회를 파악하시고는, 그 핵심 연결고리인 ‘무지’와 ‘갈애’ 끊고 마침내 생사해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8정도경>에는 오온(오취온)에 대한 관찰방법이 설해져 있습니다. 즉, 8가지 바르게 닦는 길 중 일곱 번째 ‘정념(正念, Sammā-sati)’ 부분에

Katamā ca bhikkhave <sammā sa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 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 domanassa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 domanass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 sati>.

빅쿠들이여! <바른 사띠>란 무엇인가?
빅쿠들이여! 여기 빅쿠가,
몸에 있어 몸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느낌에 있어 느낌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마음에 있어 마음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법에 있어 법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빅쿠들이여! 이런 것을 <바른 사띠>라 한다.


<바른 사띠> ‘(正念, Sammā-sati) ?
<사띠(sati)> 라는 용어를 「8정도경」에서는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노력(아-따-삐-)과
올바른 앎(삼빠자-노-)에 의한 <사띠> 즉
노력(아-따-삐-)과 올바른 앎(삼빠자-노-)이
함께 작용할 때 진정한 의미의
<바른-사띠(Sammā-sati)>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띠>는 <기억><잊지 않음><새김><놓치지 않음>
의 뜻을 지닌 명사로서 거기에는
<앎,이해(pajāna)>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띠> 번역어 중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알아차림>은 엄밀히 말해 <사띠> 번역어로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승의 경우
<알아차림>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8정도경」에서 <삼마 사띠>는
<삼빠잔나+사띠>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정도경」에서 <사띠>는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마치 ‘두 단어의 뜻이 합성된 복합어’
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즉, 4가지 염처(念處)인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한다는 것은 바로 오온(오취온)을 관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대념처경(四念處經)』의 ‘법념처(法念處)’ 부분에서는 ‘오취온’ 즉 ‘집착의 다섯 무더기’에 대한 관찰이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6가지 안밖의 감각기관 관찰’이나 ‘4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관찰‘ 역시 오취온의 관찰영역에 포함됩니다. (특히, 四聖諦 중에서 ’苦聖蹄‘ 부분)

걷는 동작인 <걸음걸이>를 통해서 오온(色, 受,
想, 行, 識)을 관찰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色(물질) - 발의 움직임, 들어올릴 때의 가벼움,
내릴 때의 무거움 등.
☆受(느낌) - 걸어갈 때 발에서 느껴지는 좋은 느낌,
싫은 느낌, 덤덤한 느낌.
☆想(인식) - 무심히 걸을 때는 모르다가 걸음걸이에
의식을 집중하는 순간, 이것이 ‘걸음’이다 ‘걷고 있음’이다 라고 걸음을 인식하는 것.
☆行(의도) - 걸어가다가 장애물 앞에서 걸음을 멈출 때
그 멈추려는 의도, 발을 들때 들려는 의도,
방향을 바꿀 때 바꾸려는 의도 등
☆識(의식) - 발의 움직임을 아는 마음, 느낌을 아는
마음, 지각(표상인식)된 것을 아는 마음,
의도를 아는 마음, 걷는 동안 나타나는
온갖 심리현상을 인식해서 아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걷는수행>을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좌선수행>에서는 그와 같은 오온(오취온)을 생생하게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걷는수행>을 통해서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오온의 요소들인 움직임, 무거움, 가벼움, 느낌, 정신적 의도, 아는 마음 등을 볼 수 있고, 그 생멸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불멸 2565(2021). 3.5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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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 이야기·Ⅳ
(태국 편)

태국의 수코타이 왕조(1238~1583년)는 태국을 통일한 최초의 왕조로서 이전까지는 캄보디아 불교 영향을 받아왔으나 이때부터 미얀마로부터 테라와다불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으니 미얀마의 바간 왕조와 같은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이 마침내 수세기에 걸쳐 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수코타이 왕조는 아유타야 왕조(1351~1767)에 의해 무너집니다.

아유타아 왕조는 테라와다불교를 신봉했으나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마하야나(대승)불교도 산발적으로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이 왕조 역시 미얀마의 마지막 왕국 꼰바웅 왕조의 침공으로 인해 수도 아유타야를 버리고 지금의 수도 방콕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천도 당시 상당부분의 국토를 미얀마에 빼앗기는 바람에 태국은 미얀마를 방어해야 할 국경선이 1800㎞로 늘어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1767년 미얀마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수한 불교유산이 파괴되었고, 역사 기록물과 귀중한 불교 문헌들까지 소실되어 현재는 그중 극히 일부만이 전해진다고 하니 태국은 미얀마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동안 태국 내부에서는 미얀마인이나 미얀마 스님들과의 교류를 꺼리는 정서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왕궁이나 가옥은 목재로 지어진 탓에 모두 불타 없어졌지만 석재는 주로 불교건축물에만 사용했기 때문에 사원이나 불탑 부처님 조각상 등은 그나마 덜 훼손된 채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유타야 지역의 계곡 곳곳에는 지금도 조각상의 잔해와 불탑, 사원 터가 수풀 속에 파묻힌 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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