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 to Meditation
kammațțhana nivedena
국내외소식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
《 캄보디아 상가라자 <뗍 봉 마하테라> 입멸 소식 》
지난 2월 26일 오후 5시 40분, 캄보디아 승단의 최고 지도자인 <뗍 봉 마하테라>께서 법납 72, 세수 93세로 입멸하셨습니다. 현재 스님의 법구는 수도 프놈펜의 <왓 운날롬> 사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장례는 100일장으로 치뤄지고 있으며, 6월 초쯤 다비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초청장이 나오면 한국테라와다불교 측에서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뗍 봉 마하테라>는 캄보디아 양대 종파인 마하니까야(온건한 진보파)와 담마윳띠까(보수적인 개혁파)을 대표하는 통합 상가라자(승정)로서 캄보디아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습니다. 1932년, 캄보디아의 문화유산 도시 시엠립에서 태어난 스님은 시엠립의 왓 리치보 사원으로 출가하여 빨리어 3장을 공부하던 중 크메르 루즈 폴 포트 철권통치(킬링필드)시대에 강제로 환속당한 뒤 투옥되어 혼독한 고초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1979년 급진적 공산정부인 크메르 루즈 정권이 몰락하자, 베트남 테라와다 상가의 도움으로 이미 환속당했던 7명의 스님들과 함께 다시 비구계를 받게 됩니다. 그후 테라와다불교의 전법포교에 진력하였고, 자신과 같이 강제환속 당한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재수계를 받게 함으로써 무너진 캄보디아 테라와다 상가를 재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캄보디아 테라와다 상가 존속과 재건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분들 가운데는 <마하 고사난다(Maha Gosananda) 마하테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님은 크메르 루주 정부의 폴 포트 통치기간과 공산주의 과도정부 기간에 해외로 탈출하여 캄보디아 테라와다 승단의 상가라자로서 캄보디아 불교를 이끌었던 스님입니다.
<마하 고사난다 마하테라>는 메콩강 유역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8세 때부터 절에 들어가 14세 때 사미계를 받았고, 사원 학교에서 기본 교과과정을 마친 뒤, 프놈펜과 바탕방 사원 대학 등에서 대학과정을, 인도 나바 날란다 대학에서 빨리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마하 고사난다 마하테라>는 <뗍 봉 마하테라>와 함께 <폴 포트> 철권통치를 겪으면서 캄보디아 국가 재건과 캄보디아 테와다불교에 크게 기여하신 분으로, 1980년 유엔 망명 캄보디아 대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태국ㆍ캄보디아 국경에 사원을 건립하고, 태국 군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인에게 비구계를 줌으로써 끊임없이 캄보디아 테라와다 비구를 양성해 냈습니다.
1988년 <마하 고사난다 마하테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캄보디아 승단 상가라자(승정)로 선출되었고, 캄보디아 승단이 정식으로 구성될 때 까지만 맡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하였습니다. 이 무렵 캄보디아에서는 친 베트남 성향의 캄프치아(캄보디아) 민주공화국에 의해서 <뗍 봉 마하테라>께서 캄보디아 연합승가의 상징적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캄보디아 테라와다 승단은 점차로 안정되어 갔고, 마침내 2006년 <뗍 봉 마하테라>는 <마하 고사난다 마하테라> 상가라자에 이어 캄보디아 테라와다 교단의 두 중추인 마하니까야 종파와 담마윳띠까 종파를 총괄하는 통합 상가라자에 추대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캄보디아가 명실공히 스리랑카ㆍ미얀마ㆍ태국ㆍ라오스와 함께 동서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테라와다 불교국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
(참고로, <크메르 루즈>는 캄보디아인 <폴 포트>가 만든 급진적인 공산주의 무장조직으로서, 1975년 캄보디아 전역을 장악한 뒤, 불교 사멸정책을 실시하였는데, 1979년 베트남 침공으로 <폴 포트>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1백만 명에 이르는 불교 승려ㆍ지식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학살의 현장을 <킬링필드>라고 합니다.
당시, 탈출하지 못했거나 처형을 피한 비구들은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 살면서 때로는 비밀리에 불교 의식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폴 포트>가 집권하기 전 캄보디아의 비구 수는 65,000~80,000명으로 추정됐는데, 1980년대 초 불교가 정상복원될 때까지 전 세계에 생존해 있던 캄보디아 비구의 수는 3,000명이 채 못되었다고 합니다.)
※
(상가라자 큰스님의 다비식은 오는 6월 4일 엄수될 예정입니다.)
※
불멸 2568. 3. 16
천림산 기슭에서
메따와 함께 _( )_
* 출처 원문: 연꽃필무렵 밴드
https://band.us/band/82904025/post/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