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불자들의 수행에 대한 열기는 현존하는 테라와다불교국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미얀마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명상센터에서 수행을 지도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미얀마 사람들이 명상센터에서 휴가를 수행으로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양곤 근교에는 10곳이 넘는 국제적인 명상센터가 있으며, 전국에 크고 작은 명상센터가 산재해 았다.
최근 남방불교 수행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위빠사나 수행은 테라와다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미얀마에서 희미하게 그 명맥을 이어오던 이 수행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미얀마 북부 틸론지방의 전설적인 수행승 ‘우 산디마’에 귀의한 민돈왕(1853~1878)이 위빠사나 수행을 몸소 실천하면서 부터이다.
영국 제국주의의 찬탈과 함께 불교청년회(YMBA)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레디 사야도와 밍군 제따완 사야도 등에 의해 불교의 전통적 수행운동이 일어난다. 그들은 쇠퇴해가던 미얀마 상가의 민족의식을 일깨워 대중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한 근대의 독보적인 선지식들이다.
레디 사야도는 교학에 정통한 수행승으로서 70권이 넘는 방대한 빨리어 저술을 남겼으며, 특히 1897에는 발표한 Paramattha-dīpanī Tīkā(궁국적 진리에 대한 해설)는 아비담마 연구와 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나빠나 사띠(Ānāpānasati:입출호흡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를 스스로 실천하고, 출가 승려와 재가 수행자들을 지도하면서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밍군 제따완 사야도와 함께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원천이 되었다. 레디 사야도는 교학과 수행이 심오했을 뿐 아니라 미얀마 독립의 정신적 지주로서 수많은 불교관련 출판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15세에 출가하여 아비담마총론(Abhidhamamattha-saṅgaha) 를 공부하던 스님은 21살 때 당시 불교교육의 중심지였던 만달레이를 떠나 산짜웅 사야도의 지도를 받는다. 25세 되던 1871년, 민돈왕의 후원으로 개최된 제5차 경전결집에서 아비담마에 대한 편집과 번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 아래서 몬와 북쪽 레디 숲으로 들어가 수행에만 전념했고, 제자들에 의해 레디또야 사원이 건립된다. 그후 1897년에는 Paramattha-dīpanī Tīkā(Manual of Ultimate Truth)에 이어 빨리어문법 언어해설서Nirutta dīpanī를 연달아 출판하였고, 재가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수많은 미얀마어 법문을 남김으로서 불교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밍군 제따완 사야도나 마하시 사야도처럼 수행처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지도하지는 않았지만, 1923년 77세를 일기로 입적한 이후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그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레디 사야도는 수행 방법에 대한 지침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호흡에 대한 관찰과 몸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한 수행법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대표적인 수행자는 떼잉구 사야도, 모곡 사야도, 사야테지, 우 바킨, 아니세칸 사야도, 고엥카 , 파욱 사야도, 우 빤냐소타, 우 냐니사라 등을 들 수 있다.
레디 사야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나빠나사띠 수행의 실천을 통해 일가를 이룬 당대의 수행자로는 순룬 사야도와 떼잉구 사야도가 있다. 레디 사야도의 직•간접 제자들은 대부분 교학에 밝고 세속에서도 명망이 높은 지식층들이었던 반면 이 두 인물은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농군이거나 빈민층의 노동자였다.
순룬 사야도는 출가하기 직전 레디 사야도의 수행제자 우 바산의 권유로 입출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담마를 체험하고 독창적인 수행법을 창안해 냈다. 순룬 수행법은 인위적인 역동적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의 침체와 산란함을 극복하고, 입출호흡의 감각과 강력한 호흡 때문에 발생하는 몸의 통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담마의 성품을 깨닫게 하는 독특한 행법이다. 현재 미얀마 중부 민잔에 위치한 <순룬구 불교명상센터>(Sunlungu Buddhist Meditation Centre)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여 개의 분원이 운영되고 있다.
떼잉구 사야도는 한국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이 미얀마 전역에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이미 미얀마의 저변에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높은 단계의 도과를 성취한 수행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입출호흡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만을 강조할 뿐 그 어떤 이론체계를 내세우지 않았다. 예비수행으로서 인위적인 거친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는 부분에서는 순룬 사야도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그는 일생동안 노동자로서의 거친 삶을 살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지 않았고, 수행법을 전파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곤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그의 수행법을 가르치는 <떼잉구 명상센터>가 있다.
모곡 사야도는 미얀마 북부에서 30년간 불교심리학과 경전을 가르친 학승이었다. 그는 수행에 앞서 아비담마 법문을 통해 수행자로 하여금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했다. 또한 12연기 도표를 이용해 5온의 윤회를 설명함으로써 인과의 원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리고 호흡과 느낌과 인식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이해했던 연기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도록 했다.
사야테지는 레디 사야도의 직계 제자로서 재가 수행자 우 바킨을 이끌었다. 우 바킨은 1952년 양곤에 수행센터을 설립하고 재가 수행자 고엥카를 수행으로 인도했다.
우 바킨과 고엔까는 느낌에 대한 관찰에 비중을 둔 위빠사나를 가르친다. 그들의 방법에는 몸의 구석구석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다소 기교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예컨대 머리라든가 목, 어깨 따위를 부위별로 구분하여 그들 각각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느낌들을 포착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대념처경에 제시된 느낌에 대한 관찰법을 세분화하여 응용한 것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의 단계적 변화 과정을 용이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방법을 가르친 우 바킨과 고엔까는 모두 재가자로서 스승과 제자 사이이다. 이들은 재가자에 의해 주도되는 위빠사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고엔까의 수련 방법은 초보자를 위한 10일 코스와 정규적인 심화과정 코스로 구분되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고엔까의 위빠사나는 마하시의 방법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아니세깐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로부터 직접 지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서적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섭렵했다. 1960년대 후반 파욱, 우 냐니사라, 우 판냐소따 등 30대의 젊은 수행자들은 미얀마 중부 빼공에 모여 4년동안 아니세깐 사야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우 냐니사라는 사가잉힐 싯따구 위하라 수도원에서, 우 빤냐소따는 따톤의 담마두따 수도원에서 교학과 아나빠나사띠를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가르쳤다.
특히 파욱은 미얀마 남부 몰야민 파욱 숲으로 들어가 『Visuddhimagga』(청정도론)를 근거로 한 사마타 수행체계를 확립한 후, 그 체계의 바탕으로 현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위빠사나 행법을 가르쳤다. 미얀마의 일반적인 수행 전통이 교학의 토대 위에서 곧바로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는 순수 위빠사나를 지향해 온 반면, 파욱의 전통은 니미따(Nimitta:관념영상)나 깔라빠(Kalāpa)에 의식을 집중하여 색계4선, 혹은 무색계4선 등을 갖춘 다음 위빠사나로 전환하는 단계적 행법을 취하고 있다. 한때, 사마타 수행에 대한 강조와, 집중과 통찰의 수행체계에 대한 이견 때문에 전통 교단으로부터 부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세계적인 관심 속에 지금도 여전히 많은 수행자들의 발길이 파욱숲을 향하고 있다.
한편 민돈왕과 조우했던 틸론 사야도(우 산디마)는 알레또야 사야도를 가르쳤고, 밍군 제따완 사야도(우 나라다)는 알레또야를 통해 틸론 사야도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다. 미얀마에 위빠사나 수행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밍군 제따완 사야도에 의해서이다.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 하에 들어간 이후 교육과 문화를 통한 불교부흥 운동이 한창이던 1914년, 밍군 제따완 사야도는 미얀마 하부 따톤에 미얀마 최초의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개원하고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걸출한 두 제자를 탄생시킨다. 그들이 바로 땀불루 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다.
땀불루 사야도는 만달레이의 한 승원에서 200여명의 학인들을 대상으로 교학을 가르치던 강사스님이었다. 밍군 제따완 사야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후 만달레이 메틸라에 있는 원데인 숲속으로 들어가 철저한 두타행(두탕가:Dhutanga)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했다. 그의 심오한 수행체험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의 명성을 듣고 내국인은 물론 많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찾아와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돌아갔다. 마하시 사야도와의 깊은 교분을 통해 마하시 사야도가 위빠사나 수행체계를 정립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일생동안 철저한 두탕가의 삶을 살면서 마하시 사야도처럼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인 전법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 현재 우 조띠까 사야도가 그의 법맥을 이어가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법을 세계에 전파시킨 마하시 사야도는 26세 되던 1932년, 밍군 제따완 사야도를 찾아간다. 그는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sutta』(염처경:念處經)를 근거로 체계화 한 위빠사나 행법을 통해 단 4개월만에 담마를 철견하고 번뇌의 소멸에 이른다. 그후 자신의 고향 세익쿤으로 돌아와 마하시 수도원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제자들을 위해 위빠사나 수행의 교리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 모두를 이해하기 쉽게 적은 『Satipaṭṭāna-bhāvana』(염처 수행)를 엮어낸다.
그의 명성은 미얀마 북부에까지 퍼졌다.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듬해 1949년, 불교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우 누 수상의 요청에 의해 현재 양곤의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지도가 시작된다. 1954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역사적인 제6차 경전결집을 삼장법사 밍군 사야도(우 위세이따다라)와 함께 성공적으로 이끈다. 1955년 스리랑카 정부는 마하시 사야도에게 자국의 위빠사나 수행 보급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1959년 사야도는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인도•스리랑카 등지를 순회하면서 위빠사나 행법을 보급시켰다. 이 무렵 스리랑카에서는 이미 7곳의 수행처에서 마하시 방식의 위빠사나 행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이번 순회를 계기로 동서남아시아에는 수많은 명상센터가 생겨나기에 이른다. 태국에는 이미 1952년 종교성의 요청으로 『Satipaṭṭāna-vipassana』가 소개된 상태였고, 1960년 무렵에는 수많은 명상센터의 건립과 함께 숙련된 수행자가 10만명이 넘었다 한다. 지금도 <왓 마하닷>을 비롯한 방콕 시내에 있는 대부분 사원에서는 마하시 계통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다. 1960년에는 빨리어『Visuddhimagga-aṭṭhakathā』(위빠사나 주석서)를 미얀마어로 번역했고, 1966에는 『Visuddhimagga-nissaya』(청정도론 해설서) 저술을 완성하는 등 일생동안 67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다.
마하시 사야도는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 sutta』(염처경), 『Ānāpānasati sutta』(입출호흡 알아차림경)와 『Visuddhimagga』등 논서의 바탕위에서 행법의 체계를 세웠다. 이 수행법은 몇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에 있어, 레디 사야도 계열의 모든 가르침은 코와 공기의 접촉으로 인한 감각에 사띠를 두는 반면, 마하시 사야도는 코끝만이 아니라 호흡할 때 나타나는 복부의 움직임에 사띠를 두고 있다. 즉 공기가 몸 속으로 들어와서 마지막 닿는 부분인 폐나 복부에서의 접촉 감각에 의식을 집중하도록 가르친다.
2. 예비수행으로서 메따바와나(자애수행), 붓다누사띠(붓다공덕 회상), 신체의 32부분 등 몇 가지 간단한 사마타(집중,선정) 수행은 권장되나, 통찰을 돕기 위한 별도의 사마타 수행은 가르치지 않는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즉 집중과 통찰을 이분하지 않고 위빠사나라고 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수행해 나간다.
3. 집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초심자들로 하여금 모든 알아차림의 대상에 명칭을 붙이도록 권하고 있다.
4. 좌선 뿐만이 아니라 행선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들뜸과 침체로 인한 몸과 마음의 불균형을 좌선이나 행선을 통해 조절하도록 한다.
5.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sutta』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 'Sampajāna' 즉 '일상행동에 있어서의 분명한 앎'을 강조하고 있다.
6. 사제 간의 잦은 문답을 통해 수행자로 하여금 법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게 된다.
그 외, 신체의 내적 혹은 외적인 접촉에 의해 인식되어지는 모든 감각을 지수화풍의 4가지 성질로서 알아차림 하도록 가르친다. 수행자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12가지의 고유한 성질을 알아차림 함으로써 물질의 존재감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담마(法: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실제로 4대에 대한 관찰은 레디 사야도 계열의 모든 가르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단지 마하시 계열은 4대 중에서 풍대, 즉 '움직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와는 달리 수행이론을 체계화한 지침서와 수많은 수행관련 서적들을 펴냈다. 1982년 입적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국내외 수행자를 배출시겼고, 위빠사나 수행의 세계화에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마하시 명상센터>는 현재 수도원장 우 자틸라 사야도와 원로 우 와사와 사야도를 중심으로 한 10여명의 사야도에 의해 가르침이 이뤄지고 있다. 수도원에는 출•재가자의 제한 없이 항상 300~500 명의 수행자들이 모여 정진하고 있으며, 특히 통역 시스템이 잘 갖추어 있어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수행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체험하고 돌아간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을 이은 제자들로는,<쉐우민 명상센터>의 우 꼬살라 사야도, <국제테라와다불교대학교> 총장 우 실라난다 사야도, <빤디따라마 명상센터>의 우 빤디따 사야도, <삿담마란시 명상센타>의 우 쿤다라 비왐사, <참메 명상센터>의 우 자나카 비왐사, 그리고 우 자띨라 사야도, 우 와사와 사야도 등이 있다.
우 꼬살라 사야도는 4념처(念處)중에서 특히 마음에 대한 관찰을 중요시했다. 현재의 마음상태,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형성조건을 이해하고 알아차림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초심자들도 알아차림의 대상에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 외의 가르침은 다른 마하시 계열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2002년 우꼬살라 사야도가 90세를 일기로 입적한 이후 그의 직계제자 우 떼자니아 사야도가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우 실라난다 사야도는 세계가 인정하는 불교철학의 권위자다. 제6차 경전결집 때 '빨리어 3장 미얀마어 사전' 편집장을 맡기도 했으며, 1959년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한 이래 위빠사나 수행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 는 말을 세상에 남기고, 2005년 78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1989년 한국에 최초로 위빠사나 수행법을 전한 마하시 사야도의 상수제자이다. 제6차 경전결집 때 세계불교도대회 사회자로서 마하시 사야도를 도와 경전교정을 담당했다. 1990년 양곤 근교에 <빤디따라마 명상센터>를 설립한 이후 위빠싸나 수행의 대가인 디 파마(Dipa Ma Barua어,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잭 콘필드(Jack Kornfield) 등 수천 명의 명상 수행자를 배출시겼고, 미국•유럽•호주•한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수행을 지도해오고 있다.
우 쿤다라 비왐사는 1953년 빨리어법사시험에 합격한 학승이었다. 1970년대 후반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3년간 수행했으며, 1991년 1월 정부로부터 명상지도자 최고의 영예 'Mahākammaṭṭānacariya' 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1979년 양곤 근교에 를 설립해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수행을 지도해 오고 있다.
우 자나카 사야도는 빨리어법사시험을 통과한 그 이듬해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6차 경전결집의 편집 일을 맡기도 하였으며, 1977년 양곤 근교에 <참메 예익따 명상센터>가 설립된 이래 30년 넘게 국내외 수행자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영국•호주•태국•말레이시아•일본 등을 순회하며 해외 전법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이 센터에서는 초심자들에게 사마타 수행의 일종인 '메따바와나'를 강조한다. 이 예비수행을 통해 수행자들은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현재 미얀마에는 300개가 넘는 <마하시 명상센터>의 분원이 있으며, 태국•스리랑카•미국•영국•호주•한국 등 세계 각국에 수많은 분원이 운영되고 있다. 마하시 계열의 수행법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데는 이처럼 직계제자들의 탁월한 능력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Satipaṭṭāna sutta』•『Ānāpānasati』•『Paṭisaṃbhidāmagga』등의 소의경전과 『Visuddhimagga』•『Abhidhammattha-saṅgaha』등 빨리어 3장 안에서 수행체계를 세우고 있다. 이론에 매이지 않고 오직 실참실수를 통해 제행의 본성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한국전통의 수행과는 달리 위빠사나 수행은 철저한 이론의 토대 위해서 지혜를 증득해가는 닦음체계를 가지고 있다.
미얀마에는 지도자의 개성과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기법을 조금씩 달리하는 다양한 형태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개발되어 있으며, 이렇게 개발된 수행법은 현재 수많은 지도자들에 의해 전국 각지의 수행센터와 사원에서 지도되고 있다.
- <글로벌시대의 개방에 따른 한국•미얀마 불교교류 현황과 과제> 中, 빤냐완따 스님
https://theravada.co.kr/99/?q=YToz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c6ImtleXdvcmQiO3M6MTI6Iuu5pOuDkOyZhOuUsCI7czo0OiJwYWdlIjtpOjM7fQ%3D%3D&bmode=view&idx=6712583&t=board
미얀마 불자들의 수행에 대한 열기는 현존하는 테라와다불교국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미얀마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명상센터에서 수행을 지도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미얀마 사람들이 명상센터에서 휴가를 수행으로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양곤 근교에는 10곳이 넘는 국제적인 명상센터가 있으며, 전국에 크고 작은 명상센터가 산재해 았다.
최근 남방불교 수행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위빠사나 수행은 테라와다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미얀마에서 희미하게 그 명맥을 이어오던 이 수행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미얀마 북부 틸론지방의 전설적인 수행승 ‘우 산디마’에 귀의한 민돈왕(1853~1878)이 위빠사나 수행을 몸소 실천하면서 부터이다.
영국 제국주의의 찬탈과 함께 불교청년회(YMBA)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레디 사야도와 밍군 제따완 사야도 등에 의해 불교의 전통적 수행운동이 일어난다. 그들은 쇠퇴해가던 미얀마 상가의 민족의식을 일깨워 대중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한 근대의 독보적인 선지식들이다.
레디 사야도는 교학에 정통한 수행승으로서 70권이 넘는 방대한 빨리어 저술을 남겼으며, 특히 1897에는 발표한 Paramattha-dīpanī Tīkā(궁국적 진리에 대한 해설)는 아비담마 연구와 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나빠나 사띠(Ānāpānasati:입출호흡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를 스스로 실천하고, 출가 승려와 재가 수행자들을 지도하면서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밍군 제따완 사야도와 함께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원천이 되었다. 레디 사야도는 교학과 수행이 심오했을 뿐 아니라 미얀마 독립의 정신적 지주로서 수많은 불교관련 출판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15세에 출가하여 아비담마총론(Abhidhamamattha-saṅgaha) 를 공부하던 스님은 21살 때 당시 불교교육의 중심지였던 만달레이를 떠나 산짜웅 사야도의 지도를 받는다. 25세 되던 1871년, 민돈왕의 후원으로 개최된 제5차 경전결집에서 아비담마에 대한 편집과 번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 아래서 몬와 북쪽 레디 숲으로 들어가 수행에만 전념했고, 제자들에 의해 레디또야 사원이 건립된다. 그후 1897년에는 Paramattha-dīpanī Tīkā(Manual of Ultimate Truth)에 이어 빨리어문법 언어해설서Nirutta dīpanī를 연달아 출판하였고, 재가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수많은 미얀마어 법문을 남김으로서 불교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밍군 제따완 사야도나 마하시 사야도처럼 수행처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지도하지는 않았지만, 1923년 77세를 일기로 입적한 이후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그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레디 사야도는 수행 방법에 대한 지침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호흡에 대한 관찰과 몸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한 수행법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대표적인 수행자는 떼잉구 사야도, 모곡 사야도, 사야테지, 우 바킨, 아니세칸 사야도, 고엥카 , 파욱 사야도, 우 빤냐소타, 우 냐니사라 등을 들 수 있다.
레디 사야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나빠나사띠 수행의 실천을 통해 일가를 이룬 당대의 수행자로는 순룬 사야도와 떼잉구 사야도가 있다. 레디 사야도의 직•간접 제자들은 대부분 교학에 밝고 세속에서도 명망이 높은 지식층들이었던 반면 이 두 인물은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농군이거나 빈민층의 노동자였다.
순룬 사야도는 출가하기 직전 레디 사야도의 수행제자 우 바산의 권유로 입출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담마를 체험하고 독창적인 수행법을 창안해 냈다. 순룬 수행법은 인위적인 역동적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의 침체와 산란함을 극복하고, 입출호흡의 감각과 강력한 호흡 때문에 발생하는 몸의 통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담마의 성품을 깨닫게 하는 독특한 행법이다. 현재 미얀마 중부 민잔에 위치한 <순룬구 불교명상센터>(Sunlungu Buddhist Meditation Centre)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여 개의 분원이 운영되고 있다.
떼잉구 사야도는 한국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이 미얀마 전역에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이미 미얀마의 저변에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높은 단계의 도과를 성취한 수행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입출호흡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만을 강조할 뿐 그 어떤 이론체계를 내세우지 않았다. 예비수행으로서 인위적인 거친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는 부분에서는 순룬 사야도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그는 일생동안 노동자로서의 거친 삶을 살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지 않았고, 수행법을 전파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곤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그의 수행법을 가르치는 <떼잉구 명상센터>가 있다.
모곡 사야도는 미얀마 북부에서 30년간 불교심리학과 경전을 가르친 학승이었다. 그는 수행에 앞서 아비담마 법문을 통해 수행자로 하여금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했다. 또한 12연기 도표를 이용해 5온의 윤회를 설명함으로써 인과의 원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리고 호흡과 느낌과 인식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이해했던 연기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도록 했다.
사야테지는 레디 사야도의 직계 제자로서 재가 수행자 우 바킨을 이끌었다. 우 바킨은 1952년 양곤에 수행센터을 설립하고 재가 수행자 고엥카를 수행으로 인도했다.
우 바킨과 고엔까는 느낌에 대한 관찰에 비중을 둔 위빠사나를 가르친다. 그들의 방법에는 몸의 구석구석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다소 기교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예컨대 머리라든가 목, 어깨 따위를 부위별로 구분하여 그들 각각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느낌들을 포착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대념처경에 제시된 느낌에 대한 관찰법을 세분화하여 응용한 것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의 단계적 변화 과정을 용이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방법을 가르친 우 바킨과 고엔까는 모두 재가자로서 스승과 제자 사이이다. 이들은 재가자에 의해 주도되는 위빠사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고엔까의 수련 방법은 초보자를 위한 10일 코스와 정규적인 심화과정 코스로 구분되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고엔까의 위빠사나는 마하시의 방법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아니세깐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로부터 직접 지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서적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섭렵했다. 1960년대 후반 파욱, 우 냐니사라, 우 판냐소따 등 30대의 젊은 수행자들은 미얀마 중부 빼공에 모여 4년동안 아니세깐 사야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우 냐니사라는 사가잉힐 싯따구 위하라 수도원에서, 우 빤냐소따는 따톤의 담마두따 수도원에서 교학과 아나빠나사띠를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가르쳤다.
특히 파욱은 미얀마 남부 몰야민 파욱 숲으로 들어가 『Visuddhimagga』(청정도론)를 근거로 한 사마타 수행체계를 확립한 후, 그 체계의 바탕으로 현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위빠사나 행법을 가르쳤다. 미얀마의 일반적인 수행 전통이 교학의 토대 위에서 곧바로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는 순수 위빠사나를 지향해 온 반면, 파욱의 전통은 니미따(Nimitta:관념영상)나 깔라빠(Kalāpa)에 의식을 집중하여 색계4선, 혹은 무색계4선 등을 갖춘 다음 위빠사나로 전환하는 단계적 행법을 취하고 있다. 한때, 사마타 수행에 대한 강조와, 집중과 통찰의 수행체계에 대한 이견 때문에 전통 교단으로부터 부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세계적인 관심 속에 지금도 여전히 많은 수행자들의 발길이 파욱숲을 향하고 있다.
한편 민돈왕과 조우했던 틸론 사야도(우 산디마)는 알레또야 사야도를 가르쳤고, 밍군 제따완 사야도(우 나라다)는 알레또야를 통해 틸론 사야도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다. 미얀마에 위빠사나 수행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밍군 제따완 사야도에 의해서이다.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 하에 들어간 이후 교육과 문화를 통한 불교부흥 운동이 한창이던 1914년, 밍군 제따완 사야도는 미얀마 하부 따톤에 미얀마 최초의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개원하고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걸출한 두 제자를 탄생시킨다. 그들이 바로 땀불루 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다.
땀불루 사야도는 만달레이의 한 승원에서 200여명의 학인들을 대상으로 교학을 가르치던 강사스님이었다. 밍군 제따완 사야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후 만달레이 메틸라에 있는 원데인 숲속으로 들어가 철저한 두타행(두탕가:Dhutanga)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했다. 그의 심오한 수행체험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의 명성을 듣고 내국인은 물론 많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찾아와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돌아갔다. 마하시 사야도와의 깊은 교분을 통해 마하시 사야도가 위빠사나 수행체계를 정립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일생동안 철저한 두탕가의 삶을 살면서 마하시 사야도처럼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인 전법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 현재 우 조띠까 사야도가 그의 법맥을 이어가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법을 세계에 전파시킨 마하시 사야도는 26세 되던 1932년, 밍군 제따완 사야도를 찾아간다. 그는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sutta』(염처경:念處經)를 근거로 체계화 한 위빠사나 행법을 통해 단 4개월만에 담마를 철견하고 번뇌의 소멸에 이른다. 그후 자신의 고향 세익쿤으로 돌아와 마하시 수도원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제자들을 위해 위빠사나 수행의 교리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 모두를 이해하기 쉽게 적은 『Satipaṭṭāna-bhāvana』(염처 수행)를 엮어낸다.
그의 명성은 미얀마 북부에까지 퍼졌다.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듬해 1949년, 불교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우 누 수상의 요청에 의해 현재 양곤의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지도가 시작된다. 1954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역사적인 제6차 경전결집을 삼장법사 밍군 사야도(우 위세이따다라)와 함께 성공적으로 이끈다. 1955년 스리랑카 정부는 마하시 사야도에게 자국의 위빠사나 수행 보급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1959년 사야도는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인도•스리랑카 등지를 순회하면서 위빠사나 행법을 보급시켰다. 이 무렵 스리랑카에서는 이미 7곳의 수행처에서 마하시 방식의 위빠사나 행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이번 순회를 계기로 동서남아시아에는 수많은 명상센터가 생겨나기에 이른다. 태국에는 이미 1952년 종교성의 요청으로 『Satipaṭṭāna-vipassana』가 소개된 상태였고, 1960년 무렵에는 수많은 명상센터의 건립과 함께 숙련된 수행자가 10만명이 넘었다 한다. 지금도 <왓 마하닷>을 비롯한 방콕 시내에 있는 대부분 사원에서는 마하시 계통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다. 1960년에는 빨리어『Visuddhimagga-aṭṭhakathā』(위빠사나 주석서)를 미얀마어로 번역했고, 1966에는 『Visuddhimagga-nissaya』(청정도론 해설서) 저술을 완성하는 등 일생동안 67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다.
마하시 사야도는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 sutta』(염처경), 『Ānāpānasati sutta』(입출호흡 알아차림경)와 『Visuddhimagga』등 논서의 바탕위에서 행법의 체계를 세웠다. 이 수행법은 몇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에 있어, 레디 사야도 계열의 모든 가르침은 코와 공기의 접촉으로 인한 감각에 사띠를 두는 반면, 마하시 사야도는 코끝만이 아니라 호흡할 때 나타나는 복부의 움직임에 사띠를 두고 있다. 즉 공기가 몸 속으로 들어와서 마지막 닿는 부분인 폐나 복부에서의 접촉 감각에 의식을 집중하도록 가르친다.
2. 예비수행으로서 메따바와나(자애수행), 붓다누사띠(붓다공덕 회상), 신체의 32부분 등 몇 가지 간단한 사마타(집중,선정) 수행은 권장되나, 통찰을 돕기 위한 별도의 사마타 수행은 가르치지 않는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즉 집중과 통찰을 이분하지 않고 위빠사나라고 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수행해 나간다.
3. 집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초심자들로 하여금 모든 알아차림의 대상에 명칭을 붙이도록 권하고 있다.
4. 좌선 뿐만이 아니라 행선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들뜸과 침체로 인한 몸과 마음의 불균형을 좌선이나 행선을 통해 조절하도록 한다.
5. 빨리어 경전 『Satipaṭṭāna-sutta』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 'Sampajāna' 즉 '일상행동에 있어서의 분명한 앎'을 강조하고 있다.
6. 사제 간의 잦은 문답을 통해 수행자로 하여금 법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게 된다.
그 외, 신체의 내적 혹은 외적인 접촉에 의해 인식되어지는 모든 감각을 지수화풍의 4가지 성질로서 알아차림 하도록 가르친다. 수행자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12가지의 고유한 성질을 알아차림 함으로써 물질의 존재감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담마(法: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실제로 4대에 대한 관찰은 레디 사야도 계열의 모든 가르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단지 마하시 계열은 4대 중에서 풍대, 즉 '움직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와는 달리 수행이론을 체계화한 지침서와 수많은 수행관련 서적들을 펴냈다. 1982년 입적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국내외 수행자를 배출시겼고, 위빠사나 수행의 세계화에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마하시 명상센터>는 현재 수도원장 우 자틸라 사야도와 원로 우 와사와 사야도를 중심으로 한 10여명의 사야도에 의해 가르침이 이뤄지고 있다. 수도원에는 출•재가자의 제한 없이 항상 300~500 명의 수행자들이 모여 정진하고 있으며, 특히 통역 시스템이 잘 갖추어 있어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수행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체험하고 돌아간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을 이은 제자들로는,<쉐우민 명상센터>의 우 꼬살라 사야도, <국제테라와다불교대학교> 총장 우 실라난다 사야도, <빤디따라마 명상센터>의 우 빤디따 사야도, <삿담마란시 명상센타>의 우 쿤다라 비왐사, <참메 명상센터>의 우 자나카 비왐사, 그리고 우 자띨라 사야도, 우 와사와 사야도 등이 있다.
우 꼬살라 사야도는 4념처(念處)중에서 특히 마음에 대한 관찰을 중요시했다. 현재의 마음상태,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형성조건을 이해하고 알아차림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초심자들도 알아차림의 대상에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 외의 가르침은 다른 마하시 계열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2002년 우꼬살라 사야도가 90세를 일기로 입적한 이후 그의 직계제자 우 떼자니아 사야도가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우 실라난다 사야도는 세계가 인정하는 불교철학의 권위자다. 제6차 경전결집 때 '빨리어 3장 미얀마어 사전' 편집장을 맡기도 했으며, 1959년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한 이래 위빠사나 수행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 는 말을 세상에 남기고, 2005년 78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1989년 한국에 최초로 위빠사나 수행법을 전한 마하시 사야도의 상수제자이다. 제6차 경전결집 때 세계불교도대회 사회자로서 마하시 사야도를 도와 경전교정을 담당했다. 1990년 양곤 근교에 <빤디따라마 명상센터>를 설립한 이후 위빠싸나 수행의 대가인 디 파마(Dipa Ma Barua어,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잭 콘필드(Jack Kornfield) 등 수천 명의 명상 수행자를 배출시겼고, 미국•유럽•호주•한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수행을 지도해오고 있다.
우 쿤다라 비왐사는 1953년 빨리어법사시험에 합격한 학승이었다. 1970년대 후반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3년간 수행했으며, 1991년 1월 정부로부터 명상지도자 최고의 영예 'Mahākammaṭṭānacariya' 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1979년 양곤 근교에 를 설립해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수행을 지도해 오고 있다.
우 자나카 사야도는 빨리어법사시험을 통과한 그 이듬해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6차 경전결집의 편집 일을 맡기도 하였으며, 1977년 양곤 근교에 <참메 예익따 명상센터>가 설립된 이래 30년 넘게 국내외 수행자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영국•호주•태국•말레이시아•일본 등을 순회하며 해외 전법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이 센터에서는 초심자들에게 사마타 수행의 일종인 '메따바와나'를 강조한다. 이 예비수행을 통해 수행자들은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현재 미얀마에는 300개가 넘는 <마하시 명상센터>의 분원이 있으며, 태국•스리랑카•미국•영국•호주•한국 등 세계 각국에 수많은 분원이 운영되고 있다. 마하시 계열의 수행법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데는 이처럼 직계제자들의 탁월한 능력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Satipaṭṭāna sutta』•『Ānāpānasati』•『Paṭisaṃbhidāmagga』등의 소의경전과 『Visuddhimagga』•『Abhidhammattha-saṅgaha』등 빨리어 3장 안에서 수행체계를 세우고 있다. 이론에 매이지 않고 오직 실참실수를 통해 제행의 본성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한국전통의 수행과는 달리 위빠사나 수행은 철저한 이론의 토대 위해서 지혜를 증득해가는 닦음체계를 가지고 있다.
미얀마에는 지도자의 개성과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기법을 조금씩 달리하는 다양한 형태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개발되어 있으며, 이렇게 개발된 수행법은 현재 수많은 지도자들에 의해 전국 각지의 수행센터와 사원에서 지도되고 있다.
- <글로벌시대의 개방에 따른 한국•미얀마 불교교류 현황과 과제> 中, 빤냐완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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