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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 세미나 논평-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관리자
2021-04-22
조회수 575

작성일 : 11-11-27 12:08 

글쓴이 : 빤냐완따


     [학술] 테라와다 세미나 논평-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2009년 8월28일, 한국 최초로 테 라와다불교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불교중앙박물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었습니다. 발제자 4분의 논문과 논평 원고를 4차례에 걸쳐 이 자료실에 올립니다. 저작권은 한국테라와다불교교단과 발제자 4분 및 논평자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인쇄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당시 논평자는 마성 스님,황순일 교수, 장철문 시인, 공만식 교수 등 4분이었는데, 발제자 임승택 교수의 논평자였던 장철문 시인 만이 확정된 논평원고를 메일로 보내주셨고, 다른 3분은 확정된 원고 없이 즉석에서 논평하였기에 원고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나마 장철문 시인의 귀한 논평원고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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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승 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의 


<한국불교의 현실에 비추어 본 테라와다불교(Theravāda Buddhism)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장철문(시인) 순천대 교수 의 논평


  

  테라와다의 정체성과 그 수용에 대하여


임승택 교수의 <한국불교의 현실에 비추어본 테라와다불교의 현황과 과제>에 붙여



                                                                                                         장철문(시인) 


임승택 교수께서 워낙 명확한 구도를 가지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발표를 요약하거나 세부적 질문을 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전에 산발적으로 했던 여러 생각을 차제에 반추할 수 있게 해주신 데 감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줄곧 동의만 표하게 되면, 토론자로서 여기 앉아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므로 몇 가지 성근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테라와다의 특성을 정리하신 부분입니다. 테라와다의 기원을 2차 결집에 두셨으며, 이어서 코스비의 인용을 통해 테라와다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하셨습니다. 빨리어와 아비담마, 그리고 율의 준수입니다.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의를 더 진전시켜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위빠사나를 위주로 하여 테라와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수행자(출가, 재가를 모두 포함)들이 어느 정도 테라와다와 초기불교를 동일시하려는 지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임교수께서는 발제문에서 테라와다를 부파불교에 귀속시켰습니다. 이것은 매우 예민한 문제이며, 또 학문적으로도 쉽게 단정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빨리 논장, 즉 아비담마의 예로 드신 목갈리뿟따 팃사의 ‘논사(論事)’는 3차 결집과 관련된 문헌입니다. 맥락상 해당 대목에서 ‘논사’를 언급하신 것은 2차 결집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테라와다를 부파불교, 혹은 소승에 귀속시키기 위한 ‘잘못된 예시의 오류’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논사’를 포함한 남방의 여러 논서들은 어느 한 시기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불교사가 거듭되면서 순차적으로 형성·축적되어온 것입니다. 논의를 한정하자면, 테라와다가 아비담마를 중시하는 것은 부파, 혹은 소승에 그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부파시대에 다른 부파와 경쟁적, 논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정체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논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곧 소승으로 분류될 논거로 비치는 것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부파불교는 2차 결집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올라가기는 하지만, 3차 결집을 전후하여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테라와다는 그 시기를 관통하여 그 이전과 이후에도 엄존하였습니다. 더욱이 2차 결집에서 출가와 재가의 분리, 다시 말하면 출가자 중심의 배타적인 상가는 의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테라와다를 초기불교와 동일시하려는 지향 역시 성찰되어야 합니다. 초기불교를 붓다 재세 시로 한정한다면 그 경계는 분명해집니다. 2차 결집까지, 다시 말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테라들이 활동하던 붓다 사후 100년까지를 초기불교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논쟁의 여지는 여전히 남습니다. 아시다시피 2차 결집은 1차 결집의 재확인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엄밀하게 말해서 1차 결집은 마하까싸파를 중심으로 한 특정 현전상가 그룹(또는 그 연합)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문외한의 견해입니다만, 시자 아난다가 결집의 참여에 유예된바 있으며, 결집과정에서도, 붓다께 소소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여쭙지 않았다, 붓다께 비구니승단의 허락을 청원하였다는 등의 허물이 지워졌습니다. 여기에서 1차 결집에 어떤 방향성이 주어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때그때 조건에 따라 2차적으로 정해진 소소계는 일일이 명시적으로 언급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비구니승단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붓다에 의하여 허락되었고 이미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아난다에게 허물을 지운 것은 매우 보수적인 결집 방향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 정하지 않으신 것은 정하지 않고, 정하신 것은 모두 지킨다는 원칙은 얼핏 붓다로의 회귀 의지만이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한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뿌라나 테라가 결집에 대하여, 나는 내가 이해한 대로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겠다고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2차 결집은 이렇게 일정한 방향성이 부여된 1차 결집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둘째, 2차 결집에서 상좌부가 다수파 또는 정통이며, 대중부가 소수파 또는 이단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정통인지는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며, 대중부가 다수파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중부의 승려들을 단적으로 계율을 파한 ‘문제적 청년 승려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상가가 원한다면 소소계는 폐해도 좋다는 유지를 받드는 특정 현전상가 그룹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그룹들이 붓다 사후 100년 동안 나름의 원칙을 지켜왔다면, 그 현전상가의 입장에서 그들은 결코 ‘문제아’들이 아니라 정통입니다. 그들 역시 뿌라나 테라의 말처럼 그들의 방식으로 붓다의 뜻에 따른 것이지요. 


정리하면, 테라와다는 2차 결집이 1차 결집의 재확인이라는 점에서 1차 결집에도 그 연원을 잇고 있습니다. 초기불교라 하더라도 붓다 재세 시와 구별되는, 마하까싸빠를 지도자로 하는 특정 현전상가 그룹(혹은 그 연합)에 의하여 방향 지워진 초기불교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테라와다의 ‘테라’는 붓다의 직접 가르침을 받은 테라 전체가 아니라, 마하까싸빠를 필두로 한 보수적 성향의 테라들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테라와다의 연원을 소박하게 초기불교와 동일시하거나 역사성을 소거한 채 부파불교, 혹은 소승에 귀속시키는 양쪽 모두에 성찰되어야 요소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임교수께서는 테라와다에 경사된 수행자들이 ‘마술적 불교’에 대하여 가혹하게 비판하는 점을 우려하셨습니다. 한국불교의 현실, 그리고 남방불교의 실태와 관련하여 경계하신 바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엘리트 불교의 전형으로 일축할 수만은 없을 듯합니다. 불교가 엘리트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은 초기불교의 출가자 구성이나 그 지향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북방불교에서도 상층지배계급의 불교 외호, 지식인들의 호응은 물론 불교 내에서도 ‘최상승법’이니 ‘상근기’니 하는 말로 대변되는 엘리트적 지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문화적 포용력이 없는, 지적(知的) 재단(裁斷)과 대척적 배제의 논리는 지적될 만합니다만, 불교의 테두리 내에 있으면서도 ‘삼법인’에 위배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불교’라는 명칭과 관련된 종교적(혹은 신학적) 현상이라는 점 때문에 무상, 고, 무아의 불교적 세계인식에 역행하는 종교현상을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는다면 불교는 무엇으로 그 정체성을 삼을 수 있을까요? 물론 문화나 종교적 현상은 그것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수행의 영역은 다를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 와서 조사해보라고 하신 말씀은 여기에서도 인용됨직합니다. 붓다는 방편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계하셨습니다. 저는 엘리트 불교의 한계와 자증적 믿음에 대한 지향이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테라와다불교가 온전히 한국에 받아들여지려면 그 교학체계가 수용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과 관련해서입니다.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수용의 방향과 관련하여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수행법을 중심으로 테라와다를 수용하고 있는 수행자들이 테라와다를 통하여 초기불교에 대한 지향을 보인다면, 경․율․론 삼장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남방과는 약간은 다른 방향을 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수행법에 있어서 경장에, 율의 정립에 있어서 율장에 비중을 둠으로써 논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논장은 경과 율에 비하여 붓다의 직접 가르침이 아니며, 후대의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축적되어온 것입니다. 그것은 붓다의 대기설법에 비하여 일반화․체계화를 지향하며, 논쟁적 성격을 강하게 띠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 일부가 경장과 율장에 의거하여 비판되거나 선호되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근대 이후의 불교사에 대한 이해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북방을 막론하고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교조적 불교 이해에 대한 경계, 둘째는 근대적 불교 연구가 가진 오리엔탈리즘적 성격에 대한 경계입니다. 전자가 근대적 성격을 구현한다면, 후자는 탈근대적 경향을 구현합니다. 이때 빨리 삼장에 대한, 혹은 남북방 전체를 통괄하는 경전군과 관련 연구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시도되면서 개별 경전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더 명확해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개별 경과 율의 전승 경로와 과정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한 종파 중심의 권위가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특정 종단 자체 내에서도 반성적으로 성찰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개별 논서들에 대한 비교 연구와 비판적 이해가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비담마의 수용은 경과 율에 의거한 학문적 검증과 수행적 체험의 반추를 통하여 비판적 혹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테라와다 종단으로서의 정체성에 균열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테라와다를 수용하는 여러 층위에서의 한 가능성이며, 얼마나 학문적 엄밀성과 수행적 뒷받침에 의하여 제기되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네번째, 계율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테라와다는 율의 수지에 가장 큰 특장이 있습니다. 이는 위빠사나가 지금 한국불교에 주고 있는 충격 이상으로, 한국불교 현실에 강력한 작용 또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말씀하신대로 지역과 시대, 문화와 전통의 차이를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율은 바로 그러한 조건들 속에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비구계 227가지는 이러한 조건들을 뛰어넘어 글자 그대로 지켜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남방’과 ‘북방’은 불교적 특색의 차이에 의해 주어진 명칭이지만, 동시에 그 경계가 지리적기후적문화적 경계라는 점은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테라와다 종단이 한국에 성립하는 데 있어서 현실적 난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율에 대한 것은 스님들께서 차근차근 점검해가시겠지만, 한 사람의 재가자 입장에서 말씀드린다면, 저 역시 어느 정도 선에서는 애초에 붓다께서 그 율을 정하신 자리로 돌아가서 지금-여기에 적용하는 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컨대, 출가자가 돈으로 보시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 만지느냐 만지지 않느냐보다 훨씬 중대한 문제는 출가자가 사원의 재정에 개입하느냐 개입하지 않으냐, 상가가 수입사업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입니다. 이것은 아마 상가의 체계와 관련하여 테라와다적 지향을 가진 재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의 하나일 것입니다. 재가자에 의한 사원의 운영과 탁발, 이것은 아마도 양보할 수 없는 테라와다의 미덕일 것입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출가자가 율을 용이하게 지키며 청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요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재가자가 출가자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특정 현전상가가 재가자에 의해 심각한 견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붓다 당시 꼬삼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소소한 계율에 얽매인 논쟁에서 비화되었습니다. 청정한 재가자들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상가의 독주가 초래할 수 있는 한 극단을 한국의 재가자들은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은 불교의 양대 축의 하나가 힘의 균형을 잃은 절름발이 불교를 의미합니다. 불교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획을 그은 대승불교는 바로 이 절름발이 불교를 경계하여 태동하였으며, 그로부터 그 정체성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때가 되었다고 한다면 패러독스가 되는 것일까요?


세계화의 시대입니다. 곳곳에서 민족과 국가, 문화권의 테두리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좋든 싫든 우물 안의 개구리식 정체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고유’와 ‘전통’, ‘순수’는 그 자체로서 설득의 덕목이 될 수 없습니다. 기왕에 형성되어온 모든 것에 대한 재조명과 재해석, 재편과 재창조의 요구가 곳곳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혼란할 때일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것을 앞장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의 삶에 편재하는 고통, 즉 근본적인 불만족에서 벗어나는 길로 안내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특정 지향, 시대, 지역, 혹은 경전에 기댄 불교가 아니라, 생사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지금 열어갈 수 있는 불교를 묻는 것입니다. 핵심은, 붓다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르침, ‘사성제’와 ‘팔정도’를 올곧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불교의 종지를 묻는 것입니다. 불교적 수행과 신행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궁극적으로 이제 한국에 그 체계를 세우려는 테라와다가 이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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